국내편 20 : 선생님도 놀란 아빠의 3년

by CㅇSMㅇS

30개월의 가정보육, 그 무모한 도전의 성적표

나의 작은 왕국을 떠나 딸의 손을 잡고 유치원 문을 두드렸다. 보통의 아이들이 만 1~2세에 어린이집으로 향할 때, 우리는 만 3세를 꽉 채워 병설유치원으로 직행했다. 세상은 내게 물었다. "아빠가 그렇게 오래 끼고 키우면 애 사회성 떨어지는 거 아냐?"

나 역시 불안했다. 남들 다 가는 어린이집을 거르고 아빠랑만 붙어 있었으니, 또래들 사이에서 쭈뼛거리거나 말이 늦으면 다 내 탓 같을 것 같았다. 30개월의 밀착 육아 끝에 받아들 성적표가 두려워, 유치원 입학 상담실로 향하는 내 손에는 땀이 났다.


"아버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입학 상담을 하며 담임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제가 육아휴직을 하고 3세까지 가정보육을 했습니다. 아이가 단체 생활이 처음이라 걱정이 많네요."

그 순간, 선생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버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요즘 같은 세상에 아빠가 3년이나 직접 끼고 키우는 경우는 진짜 드물거든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하셨네요.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그동안 밖에서 들었던 "언제까지 놀 거냐", "복직은 안 하냐"는 핀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아이를 겪어본 교육 전문가에게 듣는 그 '인정' 한마디에 30개월의 피로가 싹 녹아내렸다. 나의 무모했던 도전이 '최고의 선물'로 공인받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느라 혼났다.


선생님이 목격한 '아빠표 육아'의 흔적들

며칠 뒤, 유치원 생활에 적응 중인 딸에 대해 선생님과 다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은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버님, 서은이는 정서가 정말 안정되어 있어요. 보통 처음 기관에 오면 불안해하기 마련인데, 서은이는 아빠와의 깊은 애착 덕분인지 세상을 신뢰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무엇보다 어휘력이 깜짝 놀랄 수준이에요. 아빠랑 평소에 대화를 얼마나 많이 하신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실 바닥을 뒹굴며 동화책을 읽어주고,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을 보며 수다를 떨고, 티니핑 이름을 외우며 퀴즈를 내던 그 사소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쏟은 시간들이 아이의 입술 끝에, 그리고 단단한 마음의 근육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빠 육아의 성적표는 '평균'이나 '등수'가 아니라, 아이의 '눈빛'과 '말투'에 적혀 있었다.


단축근무의 사투, 그 이상의 가치

물론 유치원 입학이 육아의 끝은 아니었다. 나는 복직하자마자 '육아기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오후 4시면 딸을 데리러 가야 했기에, 점심시간 10분 만에 도시락을 해치우고 기계처럼 일했다.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시간만 줄어든 지옥 같은 스케줄이었지만, 나는 기어코 4시 퇴근을 사수했다.

왜냐고? 내 아이가 낯선 공간에서 밤늦게까지 부모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설 어린이집이 밤늦게까지 봐준다는 건 어떤 부모에겐 축복이겠지만, 나에게는 내 아이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는 게 더 중요했다. 내 점심시간을 반납해서 얻은 딸아이와의 저녁 시간. 그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였다.


관계의 회복을 배우는 파라다이스

전교생 8명의 작은 병설유치원에서 딸은 '관계를 끊는 법' 대신 '회복하는 법'을 배웠다. 단짝 친구와 대판 싸우고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돌아왔다가도, 다음 날이면 다시 손을 꼭 잡고 웃는 아이들. 친구가 적기에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걸 아이들은 몸소 터득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싸우고 서툴게 화해하며, 다시 서로를 보듬는 법. 그것은 아빠와 함께 보낸 3년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유치원이라는 사회가 지어준 가장 멋진 집이었다.


아빠의 3년은 헛되지 않았다

지난 3년을 돌아본다. 나는 사교육비 0원으로 내 딸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귀족 교육'을 시켰다. 그건 비싼 교재나 유명한 학원이 아니라, 아빠의 '눈 맞춤'과 '시간'으로 완성된 교육이었다.

"아버님, 서은이는 정말 잘 자랐어요."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내 인생에서 받은 그 어떤 훈장보다 빛났다. 아빠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것은 아이의 성장을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빠인 내가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한 사람의 '진짜 어른'으로 졸업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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