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벗어나야 보이는 것들

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11

by 마릴라 Marilla

처음 친구와 자취를 시작하면서 사회생활과 결혼생활을 자체 경험하게 된다. 부모의 자녀로 살다가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계약하고 공과금을 내고 장을 보고 밥을 지어먹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집 없는 자의 설움이나 여자로 살며 겪는 여러 위험 요소들, 현실물가와 한 끼를 준비하는 수고로움과 집을 유지하는데 드는 노력이 얼마나 상당한 노동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자기 살림을 하거나 자식을 낳은 딸은 엄마를 이해하고 더 감정이입하는 깊은 관계가 된다.


친구와 같이 살기 시작하며 결혼생활 미리 보기를 경험하게 된다. 성인초기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자 혼자 살기에는 위험하기에 종종 친구와의 동거를 택한다. 친한 친구이므로 잘 맞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서. 하지만 결혼생활 초기에 부부가 많이 다투고 일부는 갈라서는 것처럼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똑같은 생활비를 내고 동등한 자격으로 살지만 생활은 절대 동등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이틀에 한번 머리를 감고 저녁에만 샤워를 하지만 한 사람은 매일 머리를 감고 아침저녁으로 샤워할 수도 있다. 주마다 식사당번과 청소당번을 교대하지만 한 사람은 꼼꼼하게 그 역할을 하는 반면 한 사람은 엉성하고 칼질조차 할 줄 몰라 제대로 된 반찬을 먹을 수 없게도 된다. 누군가가 더 일하면서도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결과가 되고 말하기는 치사하니 참다가 곪는 상황이 시작된다. 절친이었고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면 가치관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외딸이라고 하면 남들은 대접받고 자란 줄 알지만 나는 일찍이 물에 손을 담그고 살았던 터라 칼질을 잘하고 기본적인 요리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는 칼질도 처음인 요리 신생아였다. 엄마가 일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어쩌면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볼 수 있는 친구는 비교적 곱게 자랐다. 나는 그게 이상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여자는 결혼하면 평생 손에 물 묻히고 살게 되니 결혼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고 엄마가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이 오래 충격으로 남아있다. 딸이니까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와 반대였다. 형편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의식이, 세부적으로는 엄마의 의지가 자식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어릴 때는 학교수업 외에 모든 사회는 가정에서 만난다. 그래서 우리 집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표준으로 삼게 된다. 특별한 부자가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은 나처럼 살 거라고 믿었던 그 표준이 무너지는 경험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두루 하게 된다. 서른이 넘어서도 자식의 집을 대신 구해주고 보증금도 내주는 부모가 많았는데 나는 그것도 이상했다. 밥벌이하는 성인이 캥거루처럼 부모한테 의존해서 산다며 내 힘으로 사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성실함은 어디서나 눈에 띄고 그 성실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까이에 선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내 일을 잘하는 건 일을 못하는 동료의 일을 떠안게 되는 업무 가중치가 되고 일을 잘할 때는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칭찬을 하지만 뭐 하나 틀어지면 세상 불필요한 사람 취급하는 것도 회사 사람이다. 나는 내 힘으로 돈 벌어 학비를 대고 알뜰하게 살았는데 그런 생활상은 남에게도 보이므로 등록금을 빌리거나 학원비를 빌리는 친구가 생긴다. 절친한 관계에선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빌려준다. 가까운 친구고 함께한 그동안의 모습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갚을 거라 생각하지만 모든 금전관계가 그렇듯 빌릴 때와 갚을 때는 입장이 달라진다. 빌려줄 때는 내가 갑이지만 돌려받을 때는 을이 된다. 돈을 떼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보여서가 아니라 돈을 빌리는 상황자체가 문제의 시작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빌린 돈을 수년뒤에 갚을 거라면 이자도 갚는 게 당연하지만 그건 빌려준 자의 상식일 뿐 원금만 돌려받아도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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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사기당하거나 속아본 적 없고 친구에게 빌려준 돈도 돌려받는 똑 부러진 사람이라도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달라진다. 가족을 나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내 인생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썼지만 가족이 동기화되는 건 관계가 좋을 때다.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도 어떤 사건으로 틀어지면 처음 보는 남보다 못한 관계로 리셋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인생전반의 투자는 주식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똑똑하게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실패한 장기투자자였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고 돈도 써본 사람이 쓴다는 말처럼 자신을 위해 본 적 없는 사람은 결심을 해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한다. 기존의 습관처럼 대체품을 이용하거나 세일상품과 행사상품으로 내 삶을 채운다. ‘통장에 1억이 있다고 그게 내 돈이 아니고 그 돈을 나에게 써야 내 돈이다‘ 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지만 오래된 습관은 그렇게 쉽게 나를 바꾸지 못했다. 생사가 복불복인 세상에서 내일 죽을지 다음 달에 죽을지 모르면서 여전히 나는 알뜰하게 산다. 정신이 번쩍 들 상상을 하자면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죽게 된다면 남아있는 재산은 원치 않는 가족에게 돌아간다. 살아있을 때 나에게 써야 내 돈이 되는 건 맞다. 오래 살 것처럼 아끼고 있다가는 돈보다 내가 먼저 떠날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은 지금이라도 나를 위해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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