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12
항상 음악을 깔아놓고 지내는 게 일상이지만 한동안 아무 소리 없이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지냈다. 시계초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공간에서 움직이지 않아도 피곤함을 느껴 안 자던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가끔 보던 유튜브 영상도 집중이 되지 않아 안 보다가 무심코 <요정재형> 채널을 보았다. 초대손님이 박경림이었다. 오래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있고 좋은 이미지로 남아 방송으로 볼 때마다 응원하는 사람이다. 주말에 재사용나눔 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봉사하던 매장이 전국 매출 1위로 주말이면 기업행사가 몰리는 곳이었다. 기업의 광고모델이나 관련 연예인이 보도자료나 홍보용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일이 잦았다. 오전 봉사를 위해 가게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 밴이 있기에 오늘도 연예인이 오는구나 싶었다. 보통 행사가 시작하는 10시경에 와서 30분 정도 있다 가는데 오늘은 누가 오픈전에 왔을까 했는데 박경림 씨가 안에서 물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미국 유학 이후 의류 관련 사업을 했었는데 대표 자격으로 쇼핑몰의 옷을 기증하고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봉사에 나선 것이다. 보통 기업 대표가 오면 요식행위로 1~2시간 봉사하는 시늉을 하다가 가는데 그녀는 미리 와서 진열을 하고 매대에서 응대를 하는 등 직원처럼 일했다. 당시 모든 방송의 연예프로에서 취재를 오고 동료연예인들이 방문을 해서 손님들과 뒤엉켜 몹시 혼잡한 상황인데도 인터뷰에 응하면서 손님 응대하며 상황정리하는 모습이 보통의 기업행사와 달랐다. 내가 봉사하는 4시간 동안 쉬지 않았고 오후 봉사자와 교대하는 시간에도 그녀는 계속 일하고 있었다. 방송카메라가 올 이벤트가 아님에도 관심을 받는 이유와 대단한 인맥의 이유를 그때 알았다. 촬영이 아니어도 모든 순간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모든 작품의 제작발표회를 진행하는 것도 그런 바탕이겠구나 싶었다.
방송중 그녀가 아버지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미국 유학을 가고 싶어서 학창 시절 꼭 보내달라고 편지를 써서 아버지 구두에 넣어뒀다고 한다. 며칠 후 책상에 아버지의 답장이 있었는데 눈물 자국이 있는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했다. “미안하다. 내가 너의 꿈은 응원하지만 지금은 못 보내주는 형편이니 대학 가면 달러빚이라도 져서 보내주마.”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자기 욕심에 아버지를 자괴감 들게 했다는 사실이 죄스러웠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울컥했다. 내가 바란 아버지의 모습이어서. 나는 부잣집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이 없고 성실하게 사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면 족했다. 그녀도 부족한 형편에서 자랐음을 방송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밝고 구김살 없는 소녀였고 건강한 어른이 되었다. 그 바탕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 파지를 줍는 일을 해도 행동과 생각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아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특정시기에 오류라도 난 것처럼 제 역할을 못하는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은 곳곳에 적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어머니가 고생하는 가정도 많았다. 어머니의 희생과 노력으로도 자녀를 잘 키울 수 있겠지만 아버지에 따라 자녀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는 걸 살수록 느낀다. 돈 버는 역할의 책임이 아니라 자녀 인생전반에 아버지는 크게 작용한다. 나는 아버지가 있으나 어떤 본보기나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자라 결핍이 많은 반쪽짜리 어른이 되었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