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면서 왜 함께 살까

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10

by 마릴라 Marilla

부모를 걱정하느라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는 자녀, 매일 싸우면서도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부모,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커플 등 드라마나 사연에 종종 등장하는 남의 이야기를 볼 때 사람들은 왜 저러고 사느냐고 한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데 스스로 고립되어 나오지 못한다고 한심해한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 눈엔 보이는데 저들은 왜 저럴까. 남들은 멀리서 전체를 보지만 당사자는 좁은 환경에 갇혀 있다. 모든 관계는 애정으로 시작해 오랫동안 끈끈하게 연결된 특수성이 있다. 남의 사연은 압축해서 듣고 보기에 쉽지만 당사자의 삶은 대하드라마다. 100% 선으로 이뤄진 사람이 없듯이 100% 악으로 가득 찬 사람도 없다. 그 드라마 안에는 좋은 기억과 행복한 기억도 섞여있다.


서양과 달리 혈연관계가 끈끈하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도 통하는 ‘정’이라는 특수함을 가진 한국사회는 가족끼리 더 깊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는 인생의 길잡이를 하고 자녀가 결혼을 해도 그 인생에 관여한다. 효를 중시하는 문화는 자녀가 부모에게 어떻게 보답하는가로 평가되곤 한다. 아줌마들이 모여하는 말에는 자식자랑이 많고 ‘해외여행을 보내줬네, 가방을 사줬네, 차를 바꿔줬네’ 같은 말들로 배틀을 하며 자신의 인생성과를 자랑한다. 그 이야기는 어느 집 자녀에게 전달되어 ‘영숙이네 딸은 의사랑 결혼한다더라, 경자네 며느리는 밍크코트를 해왔다더라’ 같은 말로 자식을 흔들기도 한다. 이런 자녀들이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자신의 인생에 투자받았기 때문이다.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키고 라이딩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자식의 인생과 겹쳐두었기에 그에 대한 성과를 내느라 부모가 원하는 대학을 가거나 부모가 원하는 직업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폭력에 시달리거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유가 분명해도 헤어지지 못하는 건 괴로운 순간만큼 좋은 순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의 모습으로 있다가 어느 날 폭력을 휘두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와 함께 한 시간만큼의 연민이 작동해 끊어낼 수 없다. 부모가 못마땅해도 외면하지 못하는 건 자녀의 인생서사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고 나쁜 기억과 함께 좋은 기억이 끊임없이 교차등장하고 애써 외면해도 자신의 인생이 괴로워 원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관계에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버튼이 있다. 인생의 전반을 다 알고 산 가족은 내 가족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놓을 수 없는 희망이 있다. 남이라면 돌아설 수 있지만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죽을 때까지, 아니 이후 세대까지 연결되는 관계이므로 나쁜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고 나쁜 관계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 개개인의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특수한 가족관계는 좋기도 하지만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존경받는 상사지만 집에서는 난폭한 가장도 있고 밖에서는 매너 좋은 사람이지만 가족에게는 막말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것이 진짜고 가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살아간다.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와 가족주의가 강한 문화에서는 그것이 인생과 미래에도 영향을 준다. 가족 안에서도 악연은 존재하고 떨어져 살아야만 온전해지는 관계도 존재하지만 가족이라는 말로 묶어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한다. 개인이 선택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복불복의 가족관계는 기존의 관념처럼 ‘가족이니까 참아야지’ 라는 말로 단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가족 때문에 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족 때문에 망한 인생을 살기도 한다. 1인가구가 다수를 이루는 사회적 변화, 비혼이 늘어가는 시대적 추세는 기존의 가족개념이 무너졌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인 이후의 가족관계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결합과 해제가 가능해야 한다. 그게 더 우리를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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