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까

어느 날 고아가 되었다 #9

by 마릴라 Marilla

성격이 부친을 닮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랬다면 인생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배에서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형제는 각기 다른 성격과 성향을 보인다. 누군가는 외향적이고 밝은 반면 누군가는 강박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바꿀 수 없는 타고난 기질과 성장환경에서 결정되는 성격은 각기 다른 개인의 특성을 만든다. 부친과 모친은 정반대의 사람이다. 남자들 사이로 여자는 지나가도 여자 많은 곳에 남자는 돌아간다는 말처럼 여자들이 많은 곳에 보통 남자 혼자는 잘 가지 못한다. 지금은 육아를 같이 하지만 집안일은 여자몫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20세기에는 아빠가 자모회에 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몸이 불편했던 모친대신 부친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모회에 참석하고 소풍을 따라다녔는데 유일한 청일점이었지만 스스럼없이 다른 엄마들과 대화하곤 했다. 장을 보거나 심부름을 곧잘 했고 자녀 옷도 사다 입혔다. 기술을 발휘해 일을 하기도 했고 조퇴할 때나 야자가 끝날 때 데리러 오는 것도 부친이었다. 다만 이런 일을 하고 대가를 바란다는 게 다른 점이다.


반대로 모친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먼저 말을 거는 편이 아니다. 안팎으로 일은 많이 했으나 다른 집 엄마들보다 약했고 순진했다. 보통 아줌마가 되면 억척스러워진다는데 왜 여전히 순진할까 생각해 보면 그 근원에는 어려서부터 자주 아팠던 아이로 가족과 주변에서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자랐고 결혼 후 자녀를 낳아서도 도움의 대상으로 인지시킨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뭐만 하려면 가족들이 나서서 “내가 할테니 하지 마. 모르면서 아무거나 사지 마” 같은 말로 위한다면서 무기력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었다. 엄마를 도와야 한다고 가스라이팅 당했던 딸은 아들들에게 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처나 고민을 대신 전달하기도 하고 엄마 인생을 이해하도록 중간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어느 집이나 그렇든 부모가 늙게 되면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부모를 무시하고 타박하는 말로 변질될 때가 있다. 또래의 어른들보다 엄마는 빨리 늙었고 반대로 부친은 젊은 사람보다 건강하고 두뇌기능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자식들은 엄마 편을 들어 일생을 1대 4로 살았지만 부친은 순간 화를 내고 고함을 쳐도 기죽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사람이라면 좌절하거나 술 취하는 등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일 텐데 어떻게 멀쩡하게 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친은 항상 부친의 뇌구조가 궁금하다고 했는데 나는 자기애 덕이라 생각했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걱정도 많고 입장 바꿔 생각하지만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우선이기에 남의 마음에 관심이 없고 이해도 안한다. 남이 상처를 쥐도 받지 않으면 그만이고 자기 마음만 돌아보면 된다. 자식을 책임지고 부양해야 한다는 부모의 의무를 생각한다면 부친은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옛날은 때가 되면 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게 순리라 믿었고 중매로 대충 만나 결혼하는 시절이므로 배우자도 복불복인 것이다. 모친은 결혼이 불복이었고 부친은 결혼이 복인 셈이다. 태평하게 있으면 걱정 많고 마음 급한 마누라가 알아서 땅을 파고 돈을 찾고 있으니 부친은 그냥 기다리면 밥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자식까지 낳은 마당에 엄마는 본인이 생업전선에 뛰어들고 자식까지 부양하는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도 자기주장은 없이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으로 모든 설움을 토해내는 삶을 살았다. 어느 집 독한 엄마처럼 본인이 다 참고 자식은 티 없이 키웠다면 나의 인생이 나아졌을지 모르나 그러지 못했다.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를 닮는 것처럼 인생에서 가장 처음 친구이자 오래된 친구인 모녀는 그렇게 닮아간다. 돈을 벌어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도 본인을 위하지 못한 삶을 산 것처럼 딸도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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