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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법 부터 다시 배우다.

무기력 속에서 피어난 의지의 싹

by 라온


그날은

유난히 숨이 가빴다.
누가 내 가슴을 꾹 눌러놓은 것처럼,
아무리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도
공기가 폐 속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도,
찬물을 마셔도,
무언가를 씻어내듯 샤워를 해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와중에 나는 또다시


“그냥 기분 탓이야.”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래.”
“잠 푹 자면 나아질 거야.”


모르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기어코 상처를 받고야 만다.


그러나.
단순한 '기분'이나

'생각' 따위가 아니란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마음이 꾸역꾸역 참았다가 보내온,
'살려달라'는 몸부림 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동’,‘활동’ 같은 단어에

상당히 질려 있었다.


움직이는 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었지

나를 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어서’ 라는 말이,

내 삶에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안타깝게

전혀 없었다.


내 몸은 늘 참는 데 익숙했고

기계처럼 기능하는 데만

훈련이 되어 있어서,

늘 당연하다는듯이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서른.

요가를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나에겐 '어디에나 널린 운동'중

하나에 불가했던 요가는

숨 쉬는법 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조금씩 체감하게 해 주었다.

아-
나 아직 살아 있었구나.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숨을 쉬는 건
단순히 생존을 위한 작용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나를

인정받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숨만 쉬었을 뿐인데,
마음이 조금 정리되고.
응어리가 어느정도 풀리고.

꽤나 안심이 되고.


더할나위없이 눈물이 났다.

이유 모를 그것은
조심스레 속삭였다.


“드디어 네가 나를 돌아봤구나.”

하고.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불을 끄고 조용히 누워
숨을 쉬는 연습을 했다.

경쟁도, 결과도, 성과도 없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삶'과의 치열한 전쟁이 없는

그런 시간.

‘변화’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았지만,
이미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어떤 것'의 시작이었다.


이후로도 이따금씩,
몸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은 걷고 싶어.”
“햇살을 한 번 맞고 싶어.”

그리고 그 말을
조금씩 들어주는 내가 생겼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

살면서 처음이었다.


세상은 늘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이루기를 요구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내 몸과 마음은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숨을 쉬는 일이야.”


나는 이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한다.


살아가고 있다는 건

무언가를 성취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매일 조금씩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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