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내 시간 속, 천천히 피어난 변화들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마음을 살짝 들썩이게 한다.
별일 없는 날인데,
이상하게 괜찮았던 날.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왜일까.
아무 이유 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이
내 마음에 작은 틈을 만들어준 것 같았다.
마음이 무거울 땐
하루가 거대한 짐짝처럼 느껴진다.
이불 안에 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핸드폰 알람보다
내 한숨이 먼저 울려 퍼질 때.
머리는 복잡한데,
정작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을 때.
감정은 정체되어 있었고,
의욕은 맨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럴때는
아침을 여는 것도.
양치를 하는 것도.
창문을 여는 손짓 하나조차,
온몸을 끌어당기는
모래주머니처럼 버겁다.
평소처럼 의욕없이
늦장부리며 일어난 어느 아침.
문득 돌아 본 햇빛이,
조금 다르게 들어오는걸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창문을 열었다.
원래는 이런 행동 하나에도
마음을 단단히 묶어둬야 하는데,
그날 아침은 그냥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움직여졌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의식하지 않는 사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거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머릿속에 맴도는 불안도,
미지근한 무기력도,
세수하듯 감정을 씻어낼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온전히 그 감정을 견뎌내야만
나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다 정신차려보면
썰물 처럼,
‘스스로 밀려나가는 순간’이 온다.
그 하루가, 딱 그랬다.
나는 종종,
‘나아지는 것’이
거대한 계기로 찾아올 거라 착각했다.
감정을 덮을 만큼
감동적인 장면이나
모든 걸 바꿔줄
명언 한 줄 같은 것 말이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평범하고
평온해서 더 신기했다.
이불을 걷어 햇빛에 널었고,
오래 방치했던 손톱도 정리했다.
머리를 결에 맞춰 빗었고,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도 움직여 보았다.
누가 시킨 것도,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 안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니까
행동이 먼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뿐이다.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감정이란 건
손에 잡히는
'변화'가 아니라
서서히 번져오는
'온도' 같은 것이라는 걸.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다.
그저 내 안에서 무언가가
‘아주 조금, 덜 무거워졌다’는 걸
알아챘다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하루는 충분히 괜찮은 하루가 되었다.
그 감각은
마치 오래 묵힌 옷장에서
구겨진 셔츠 하나를 꺼내
햇살 아래 펼쳐두는 것과 닮아 있었다.
주름이 펴지지 않아도,
빛만 닿아도 옷감은 숨을 쉰다.
나도 그 날,
조용히 펼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작은 한 귀퉁이 일지라도 말이다.
밤이 되자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방 안에 누워
불을 끄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일이 조금 덜 두렵게 느껴졌다.
"내일은 또 뭘 하면서 떼우지?"
이런 무기력한 생각들이,
오늘처럼만 되어도 괜찮겠다는
'기대'로 바뀌었다.
물론 아주 미세한
감정의 변화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오늘 살아낸 방식이
달라졌다는 증거인건 확실하다.
'삶'이란 건 어쩌면
이런 하루들이 이어지는 거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그저그런
의미없는 날이겟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 평범함에
마음 한 칸쯤 움직인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