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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자존심

숨 쉬는 법을 배운 나의 시간들

by 라온 Ap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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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텨낸 시간 속에서

결국 가장 놓치고 있었던건 '나'였다.






스무살 즈음.

간호조무사로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내 삶에 처음으로 생긴 '쓸모' 같았다.

내가 돌보는 환자가

조금이라도 편해지면
내 아픔도 조금은 잊혀질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이라는 그 말이
내가 존재해도 되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들었어야 했던

그 다정한 직업은,
내게 처음부터 잔인한 시간이 되다.


출근 전 어지럼증으로

두어번 토하고 나서야 병원에 도착했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날엔

두통약을 털어 넣은 뒤

웃는 얼굴을 준비했다.

손은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지만,
마음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으로 가득했던거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될 일이었다.
내가 저 환자보다

더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진료실 문을 닫고 벽에 기대어

조용히 숨을 고르는 날이 늘고 있었다.
가면을 바꿔 끼우는

그 잠깐의 시간이 없었다면,

절대 그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쓸데없는 자존심'은

그 시절 나를 살게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나는 십년이 넘도록,
도움이 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나를 잃어가는 연기를 매일매일 해왔다.


아픈 몸, 무너진 마음을 감추고.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점점 스스로에게서 멀어졌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끔 숨이 막히고
그때의 나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그 누구보다 아팠던 나에게

“잠깐 쉬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그땐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나조차도.


지금은 안다.
그 말을 가장 먼저 해줘야 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나 자신 이었다는 걸.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전에,

나부터 돌봤어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려 한다.
잠시 멈춰 있어도 괜찮은 사람.
혼자 울어도 괜찮은 사람.

길에 널리고 널린

그저 평범한 그런 사람.


그게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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