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결코 이상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자신의 기분이나 생각을 숨기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유교 문화의 영향일까.
예의를 중시하고,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는 분위기 속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종종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물론 감정에 휘둘려 이성을 잃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것과 감정을 억누르거나 감추는 일은 분명 다르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적으로 건강한 일이다.
감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반드시 과장되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면,
“그 말에 기분이 상했어요”
정도로 자신의 기분을 말하는 것.
이처럼 솔직하게 감정을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시작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당연한 일’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외가 쪽 친척들 사이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었다.
여자 사촌들은 대부분 음악이나 신학을 전공했고,
조용하고 순응적인 성향이었다.
반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 했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아이였다.
특히 어릴 땐 눈물도 많았다.
그런 나를 어른들은
“왜 저렇게 예민하냐”며 불편해했고,
나는 늘 ‘문제가 많은 아이’로 보였다.
진로 역시 사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여자 학생이 거의 없던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는데,
당시 같은 학번에 여학생은 나 혼자였다.
처음엔 외롭고 낯설었지만,
남자들 틈에서 버텨낸 시간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는 ‘다른 사람’을 쉽게 배척한다.
나도 그 차가운 시선을 여러 번 온몸으로 겪었다.
사람들은 나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여자가 드문 전공을 선택한 것도
그들의 이질감을 키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당시의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그리고 남편을 만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남편은 내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슬플 땐 슬프다고 말하는 내 태도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나의 모습을 그대로 봐주었고,
“그게 오히려 대단한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나는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불안을 깨뜨리는 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
감정 표현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 소통을 위한 시작이자,
더 나은 관계를 위한 작은 용기다.
다름을 틀림이 아닌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조금 더 성숙해지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