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그저 멈춰 선 기분, 잠깐 나를 잃은 듯한 순간.
나를 돌아볼 틈도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하게 밀려왔다.
나이는 어느새 들어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 선 듯했다.
달라진 게 없는 나 자신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챙기고, 가족을 돌보며
정신없이 달려온 나날들.
어느새 ‘내가 뭔가를 해도 될까?’라는 물음조차
마음 깊숙이 밀어 넣고 있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지금 20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뭐라고 말할 거야?”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지금은 어리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니까… 도전해 보라고.”
그러자 친구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70대의 네가 지금의 너에게 해준다면,
그 말은 어떻게 들릴까?”
그 말에 마음 한쪽이 툭—하고 무너져 내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붙잡고 있던 기준들이
한순간에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스테이크든 푸아그라든,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것처럼
삶도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
70대의 너도 분명 지금의 너를 응원할 거야.”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오랫동안 ‘이제는 늦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그 안에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내게 묵직한 위로가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가 많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많고,
살아보지 않은 날들이 훨씬 더 많다.
광대한 우주 속 나는
티끌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땅 위에서도
아직 걷지 못한 길은 수없이 많다.
아마 평생을 다 써도
다 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 안에 갇혀 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작아도 좋으니
무언가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흩날리며 살아간다.
가볍고, 흔들리고,
금세 사라질 것처럼 보여도
바람에 날린 꽃잎도 결국 어딘가에 스며들어
씨앗이 되고, 생명이 된다.
그렇게 쌓여가는 순간들이
결국 ‘나’라는 모양을 만들어줄 거라는 걸
이제는 믿고 싶다.
그러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작은 용기들이 모여
결국 나를 이루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