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불안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지쳤기 때문이다

by 르은


어느 심리학자는 말했다.

인간이 느끼는 거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은

‘두려움’이라고.

화도, 불안도, 질투도 결국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왜 그렇게 자주 두려움을 느낄까.

본능처럼 밀려오는 이 감정은, 어쩌면

우리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작년, 유난히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겹쳐서 찾아왔고,

나는 그 모든 상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머리는 멍하고, 마음은 늘 가라앉아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유 없이 불안했다.

하루하루가 깊은 땅굴 같았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주변에서는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더는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


상담사와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내 안에 있던 감정들이 술술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를 꺼내놓자

묵은 감정들이 하나둘, 얼굴을 드러냈다.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많이 지쳤어요. 지금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증세가 나타나는 상태예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줄 알았다.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꾸 나를 탓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또 실망했다.


그런 내게,

상담사는 조용히 말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힘든 일이 반복되면 흔들릴 수 있어요.”


그 말은

지금도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


이유 없는 불안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일.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불안은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충분히 괜찮지 않다는 생각.


그 모든 불안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대신,

그 감정이 왜 찾아왔는지를 이해하고

그 조차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완벽하지 않은 나.

때때로 불안한 나.

그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게 어쩌면,

조금 더 단단해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아주 작고 조용하게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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