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지쳤기 때문이다
어느 심리학자는 말했다.
인간이 느끼는 거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은
‘두려움’이라고.
화도, 불안도, 질투도 결국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왜 그렇게 자주 두려움을 느낄까.
본능처럼 밀려오는 이 감정은, 어쩌면
우리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작년, 유난히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겹쳐서 찾아왔고,
나는 그 모든 상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머리는 멍하고, 마음은 늘 가라앉아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유 없이 불안했다.
하루하루가 깊은 땅굴 같았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주변에서는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더는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
상담사와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내 안에 있던 감정들이 술술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를 꺼내놓자
묵은 감정들이 하나둘, 얼굴을 드러냈다.
상담사는 내게 말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많이 지쳤어요. 지금은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증세가 나타나는 상태예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줄 알았다.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꾸 나를 탓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또 실망했다.
그런 내게,
상담사는 조용히 말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힘든 일이 반복되면 흔들릴 수 있어요.”
그 말은
지금도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
이유 없는 불안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일.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불안은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충분히 괜찮지 않다는 생각.
그 모든 불안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대신,
그 감정이 왜 찾아왔는지를 이해하고
그 조차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완벽하지 않은 나.
때때로 불안한 나.
그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게 어쩌면,
조금 더 단단해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아주 작고 조용하게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