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기술적인 과정일 거라 생각했다.
핏, 원단, 공정, 단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처음엔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옷을 구상하고, 디테일을 정하고, 원단을 만져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의외로 ‘감정’이었다.
옷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에 붙는 감정이었다.
어떤 날은 단정하고 싶고, 어떤 날은 튀고 싶고, 어떤 날은 그냥, 너무 조용히 있고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심지어 한 사람 안에서도 자주 바뀐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옷은 그 감정에 딱 맞는 실루엣, 그 기분을 지켜주는 옷이었다.
너무 꾸미지 않아도 스스로를 정돈할 수 있게 해주는 옷. 힘주지 않아도 ‘나’를 입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옷.
디자인을 스케치할 때, 가장 먼저 상상하는 건 ‘태도’였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앉을까, 걸을까, 입고 있는 자신을 어떻게 느낄까.
핏 하나, 암홀 깊이 하나, 심지어 단추의 위치까지— 그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취향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의 흐름을 하나하나 옷의 구조로 설명해 나가는 일.
나는 여전히 옷에 서툴다. 하지만 감정에는, 어쩌면 꽤 진심이다.
누군가에게 옷이란 매일 입어야 하는 것, 그래서 더 무심하게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무심한 선택’ 속에 아주 작은 위로를 숨겨두고 싶다.
하루가 조금 흐트러진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괜찮아, 너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듯한 옷.
내가 누구인지, 오늘 어떤 태도로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말 걸 수 있게 해주는 옷.
나는 그런 옷을 만들고 싶었다.
결국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한 사람의 감정을 매일 다시 재단하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