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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간이 나를 키웠다 >

by 김예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가게를 키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가게가 나를 키우고 있는 걸까.”


처음엔 ‘운영’에 집중했다.
매출을 만들고, 손님을 모으고,

브랜드를 알리고,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좋은 사장이 되기 위해 책을 찾아 읽고,
멋진 공간을 만들기 위해

틈만 나면 구석구석을 정리했다.
손님에게 친절한 말투를 연습하고,
직원들과의 거리를 고민하며 내 감정을 조율했다.


매일의 선택이 ‘정답’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게 스물여섯의 나에게 주어진 몫 같았다.


그런데 3년 차가 된 지금,
돌아보면 이 공간이

나를 훨씬 더 많이 키워줬다는 걸 알게 됐다.


가게는 말없이 나를 가르쳤다.
혼자 있는 시간과도 친해지는 법,
실수한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는 법,
지나가는 인연과 너무 깊이 기대지 않는 법.


사장이라는 타이틀은 처음엔 커 보였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옷 같았고,
실수라도 할까 봐, 부족해 보일까 봐
늘 긴장한 채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옷을 매일 입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 옷에 맞게 자라고 있었다.


내가 힘들어 보일 때,
단골손님은 “오늘도 파이팅이에요.”라며

따뜻한 말을 건넸고,
아르바이트생은 조용히 내 앞에

커피 한 잔을 놓아주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은 날,
그 고마움을 기억하며
나도 다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가게를 청소한 건 나였지만,
그 공간에서 내가 정돈된 날도 많았다.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채워지는

이 공간 안에서
나는 수없이 지치고,

또 수없이 위로받았다.


이제는 조금 안다.
좋은 공간이란,
좋은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곳이라는 걸.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대단한 일이라는 것도.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이젠 조금은 편해졌고,
‘내 가게’라는 말이
이젠 조금은 따뜻하다.


시간은 흐르고,
유행은 바뀌고,
가게 앞 거리에 놓인 간판들도 하나둘 바뀌겠지만—


내가 여기서 배운 것들은
아마 꽤 오래 남을 것이다.


천천히 생각하기.
다정하게 말하기.
그리고 오늘 하루를 정성스럽게 살기.


그건 커피를 내릴 때나,
사람을 대할 때나,
인생을 걸어갈 때나
모두 똑같았다.


가게를 지키는 동안,
나는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이 공간은
내가 키운 공간이자,
나를 키운 공간이었다.


이제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내일도 문을 열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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