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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로 다져진 리듬 속에서 옷이 떠올랐다>

by 김예지

카페는 내게 ‘살아가는 리듬’을 알려준 곳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테이블을 정돈하고,
비슷한 자리에 앉는 손님들의 얼굴을 익히는 하루들.


그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나는 매일을 살아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작지만 내 손으로 만든 하루’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어느 날, 매장을 정리하고 돌아오던 밤이었다.
따뜻한 조명이 꺼진 후의 조용한 거리,
내 손에 남은 원두 향,
그 정적 속에서 자꾸 '옷'이 떠올랐다.


단정한 카라,
가볍게 퍼지는 A라인 원피스,
플리츠 사이로 조용히 움직이는 실루엣.


생각했다.
“이 리듬을, 누군가의 옷으로 전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순간,
카페로 다져진 내 감각이
천의 형태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커피의 향처럼 은은한 색감,
따뜻한 잔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를 때처럼,

평온하게 내려앉는 라인.

하루를 정돈해 주는 핏.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른 세계를 꿈꾸기 시작했다.


바로, 나만의 브랜드.


처음엔 너무 거창해 보였다.
패션 브랜드라니.
디자인 전공도 아니고,
마케팅도 배운 적 없고,
그저 감각 하나 믿고 시작하는 내가 괜찮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자꾸 그 세계에 머물렀다.


누군가의 하루를 위해 커피를 내리듯,
누군가의 하루를 위해 옷을 만든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옷을 만들고 싶은지.


힘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정돈할 수 있는 옷.
거울 앞에 섰을 때,
말없이 “괜찮아,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옷.


사실은,
그런 옷이 가장 필요했던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브랜드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도 무섭고,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카페는 나를 조용히,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 단단함 위에
‘옷’이라는 세계가 피어났다.


내가 브랜드를 시작한 건
무언가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경험한 조용한 단단함을
옷으로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카페에서 익힌
‘정돈된 하루의 감각’을
누군가의 옷장 속에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천을 보기 시작했고,
핏을 상상했으며,
이름 없는 브랜드 하나를
마음속에서 조용히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건 욕심이라기보단
살아가던 방식의 또 다른 확장이었다.


내가 익힌 태도,
지켜온 하루,
그 모든 것을 천 위에 올려보는 일.

그것이
내가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려 한
진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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