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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감정을 재단하는 일 >

by 김예지

옷을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기술적인 과정일 거라 생각했다.


핏, 원단, 공정, 단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처음엔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옷을 구상하고,
디테일을 정하고,
원단을 만져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의외로 ‘감정’이었다.


옷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에 붙는 감정이었다.


어떤 날은 단정하고 싶고,
어떤 날은 튀고 싶고,
어떤 날은 그냥, 너무 조용히 있고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심지어 한 사람 안에서도 자주 바뀐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옷은
그 감정에 딱 맞는 실루엣,
그 기분을 지켜주는 옷이었다.


너무 꾸미지 않아도
스스로를 정돈할 수 있게 해주는 옷.
힘주지 않아도
‘나’를 입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옷.


디자인을 스케치할 때,
가장 먼저 상상하는 건 ‘태도’였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앉을까,
걸을까,
입고 있는 자신을 어떻게 느낄까.


핏 하나, 암홀 깊이 하나,
심지어 단추의 위치까지—
그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취향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의 흐름을
하나하나 옷의 구조로 설명해 나가는 일.


나는 여전히 옷에 서툴다.
하지만 감정에는,
어쩌면 꽤 진심이다.


누군가에게 옷이란
매일 입어야 하는 것,
그래서 더 무심하게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무심한 선택’ 속에
아주 작은 위로를 숨겨두고 싶다.


하루가 조금 흐트러진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괜찮아, 너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해주는 듯한 옷.


내가 누구인지,
오늘 어떤 태도로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말 걸 수 있게 해주는 옷.


나는 그런 옷을 만들고 싶었다.


결국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한 사람의 감정을
매일 다시 재단하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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