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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

by 김예지

처음엔, 일이 나를 흔들 줄만 알았다.


몸은 지치고,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매일 뾰족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이 맞을까?’
‘계속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했고,


가끔은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커피 잔 안에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청소를 하고,
밤엔 천을 만지며 스케치를 하다 보면—


나는 또,
나를 조금 더 견디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쌓였다.
익숙해졌고,
익숙해진 만큼 단단해졌다.


나는 이제 안다.
일이 나를 갉아먹는 게 아니라,
조금씩 다듬고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라주는 준비 시간,
혼자 감당해야 했던 어느 날의 새벽,
클레임 후에 찾아온 침묵,
스케치가 마음에 들지 않던 날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천천히, 안에서부터 채워주고 있었다.


예전에는
‘버티고 있다’ 고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살아내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일이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매일 묻고, 다듬고,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을 한다.

흔들리는 날에도,
지치는 날에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도록.

일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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