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하이데거의 시각 훔쳐보기
*빈센트 반 고흐 <구두 한 켤레>를 보고 하이데거는 너른 대지에서 밭일을 나선 한 여성 농부의 고단하며 강인한 발걸음을 보았다고 한다. 구두 가죽에는 기름진 땅의 습기와 풍요가 깃들고 구두 바닥으로는 저물어가는 들길의 고독함이 밀려온다고 했다. 구두라는 이 도구 가운데에는 대지의 말 없는 부름이 들려오는 듯하고 잘 익은 곡식을 조용히 선사해 주는 대지의 베풂이 느껴진다고 했으며 겨울 들녘의 쓸쓸한 휴경지에 감도는 모종의 대지의 거절이 느껴진다고 했다. 빵을 확보하려는 불평 없는 근심, 고난을 이겨낸 후에 오는 말 없는 기쁨, 새로운 씨앗이 발아해 겪어야 했던 아픔, 삶의 끝에서 오는 위협 앞에서 떨리는 전율이 느껴진다고 했다. 구두는 대지에 속해 있으며, 농촌 아낙네의 세계 속에 포근히 감싸인 채 존재한다고 했다. <예술 작품의 기원> 일부 발췌
내 구두는 어떤 대지에서 열리는가, 간호사의 세계 속에 감싸인 채 어떻게 존재하는가. 태어나고 죽어가는 생명의 순환이 일어나는 땅에서 근무화의 가죽에는 무엇이 깃드는가.
구두라는 도구에는 압축된 시간 속 이름 모를 누군가의 체액과 혈액이 말라가며 스며든 씨줄과 날줄이 엮여 확실한 절망과 불확실한 희망이 차곡히 쌓여있다. 긴박한 발걸음에서 생명을 구하려는 누군가의 쓰라린 외침이 들리며 외침 후에는 아우성 속 정적이, 때론 침묵 속 안심이 들린다. 죽음의 목전 어떤 이의 밑창은 닳아 있고, 어떤 이의 밑창은 새 신처럼 고우며 신을 수 없기에 쓸쓸한 신발 옆을 지키는 고독한 근무화가 보인다. 매일 삶의 끝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목도하며 실존에 대한 무한한 선택지 중 본인만의 답을 찾으려는 애달픈 슬픔이, 슬픔을 저미고 고된 하루 끝에 못내 살기 위해 잠을 청하는 너와 나, 그와 그녀가 보인다. 일몰 뒤 뜨는 해를 보지 못한 그의 영혼을 향해 허공에 휘젓는 그녀의 두 손이 보인다. 동글한 영원을 뜻할 것 같던 그녀의 눈물은 흘러 다시 내 근무화에 마르지 않는 체액으로 스며들고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그것도 도구 속에 파묻히며 조용히 삶의 위로를 받는 그들이 보인다. 근무화는 대지에 속해 있으며, 간호사의 세계 속에 포근히 감싸인 채 존재한다.
<간호 작품의 기원> 끌로드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은 실존적인 불안 앞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자(근무화)는 열려있는 장 안에 이미 있는 것으로 드러나있지만 존재(근무화가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를 맺는 것)는 일련의 이야기로 보이게 된다. 하이데거는 현대 인류가 존재에 대한 물음을 잊은 존재망각 상태라 말했지만 공동현존재 간 배려함이 근본적 형식이라 언급했듯 간호사만큼은 존재망각의 숲을 헤치며 존재의 의미를 찾는 온정 한 철학하는 자라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날 선 물음은 지독한 철학으로 가슴에 박히고 본인만의 철학으로 제련해 간호로써 환자에게 펼쳐내는 것. 시간의 두께가 두꺼워짐에 따라 완숙해지는 철학은 우리들의 근무화에 담겨 그와 그녀에게 향한다.
세상살이, 모든 간호사가 하이데거와 같은 시각을 갖진 않을 테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동료들은 부정하고,무정하며, 비정한 확률의 신에게 배신당한 그들이 죽음으로 이르는 길에 저마다의 철학으로 아늑함이 되어주길 바란다.
대지에서 열린 내 근무화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리하여 현존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