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1 유튜브를 개시했다. 2024.07.01 팟캐스트를 업로드했다. 2025.04.03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했다. 창작을 통해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매해 하나씩 나만의 일기장을 추가하고 있다. 나의 의식 속에 막연히 갇혀 표상으로 떠오르던 인식들을 외적으로 표현한다. 나의 작은 배설물은 두 눈의 동공을 타고, 두 귀의 고막을 타고, 시신경을 타고, 달팽이관을 지나 시상으로 다시 나의 의식으로 들어온다.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을 만들어 다시 내적인 곳으로의 순환, 그 과정에서 생각을 하는 나, 타이핑을 하는 나, 말을 하는 나, 글을 읽는 나와의 만남을 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세상에 내가 실존한다'는 자가증명을 위해 시작한 창작이 이제는 살아있으려면 창작을 해야 한다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창작에 타는 목마름이 있나 보다.
언젠가 주말이라 담당 환자와 오랜 시간 대화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삶을 버텨내는 가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대화의 마무리쯤 서두에서 말한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창작은 생존을 위한 저만의 투쟁의 방식입니다."라고 말하자 환자분께서 그것 참 멋진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저는 요즘 꿈을 꿔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꿈이 아니라 진짜 수면으로 일어나는 꿈 말이에요. 근데 웃긴 게 꿈 안에 제가 나오거든요? 제 모습이 10대의 것이었다가, 20대, 30대 그러다 지금의 나이로 천천히 지나가더라고요. 꿈에서 본 젊은 시절 제 눈에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꿈에는 불안, 근심, 걱정은 없었습니다. 단지 미래를 향한 당당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세상의 역경 따위 굳건한 기세로 이겨낼 소년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런 소년이 지금의 저로 나이가 들어가며 찬란히 빛나던 눈은 그 수명을 다해 빛이 꺼져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저는 어떻게 그렇게 빛나던 존재였을까요?"
나는 침묵했다.
"이제 저는 압니다. 미래를 향한 꿈은 ‘앞으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의 집합’에서 나오는 것을. 건강한 심신과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개념을 가지고 살던 젊은 소년에게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었죠. 그렇지만 지금의 저는 보시다시피 나이도 많이 들고, 병원에 매일같이 입원하는 처지잖아요. 앞으로 제가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무엇을 동력 삼아 빛나는 눈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환자분의 눈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역시 간호사님은 따뜻한 사람이에요. 선생님,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요즘 꿈을 꿔요. 그런데 이 꿈이라는 것 말입니다,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꾸는 꿈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경험이 무의식으로써 만들어지는 표상들이잖아요. 전 그 부유한 표상을 글로 적어내려고 합니다. 현실에서는 가질 수 없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제 안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마구 뛰어요. 그건 분명하게 제 것이잖아요. 세상에 힘찬 울음을 뱉고 나서부터 온몸으로 겪어온 모든 것들이잖아요. 제 영혼이 만든 상상, 공상, 몽상! 얼마나 멋질까요. 가끔은 악몽일 수도 있겠지만 악몽마저 저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게 주는 선물, 그건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70년이라는 저의 경험이겠죠. 그렇게 해서 과거의 나의 이야기로 미래의 꿈을 꿔보려고 합니다. 제 삶의 궤적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별들의 운행을 담은 글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꿈을… 간호사님이 창작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 말씀하실 때 심금이 울렸습니다. 어쩐지 간호사님의 눈에 별빛이 가득하다 싶었어요. 우리 같이 꿈을 꿔봐요."
환자와 대화를 마치고 나올 때 환히 빛나고 있던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곳에 앉아 있던 사람은 일흔의 소년이었다.
꿈이란 무엇일까. 그가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일까, 혹은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일까. 내 인생에 대한 항쟁의 방식인 창작으로 나는 어떤 꿈을 꾸는가. 창작은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을 대변한다. 과거의 내가 보낸 경험이란 원석을 나만의 언어로 세공해 내보인다. 언어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 언어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 언어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야 한다. 내가 창작으로 살아내는 것처럼 내가 창작한 글로 누군가 살아냈으면 좋겠다. 나의 언어로 그의 눈에 있던 달을 빛내 주었듯 나와 일흔의 소년들을 이어주는 첫 번째 발걸음이 브런치스토리가 되길 꿈꿔본다.
창작이란 어쩌면 살아내는 것, 그리고 살아가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