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를 맞으며 느낀점
학교가 끝나고 하교하는 때가 다가오면 싫었다. 햇살이 밝을 때는 밝은 햇살을 맞으며 삼삼오오 가는 아이들을 마주해야 했었다. 그리고 더 싫은 날은 바로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은 빗속이었다. 우산을 쓰고 친구들과 웃으며 걸어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산이 없이 혼자라는 느낌은 깊은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아이들은 즐겁게 가곤 했다. 우산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같이 가고, 있으면 있는 대로 남에게 같이 쓰고 가자고 말했다.
학교에서 나를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나만 혼자인가에 대한 질문보다 이 비를 맞고 가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학기 초에 전따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전에는 같이 가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상황이 비를 맞는 것 이상이었다. 익숙해지려 해도 비가 내 위에 떨어지는 것은 차갑고 소름 끼쳤다.
나는 점점 비를 맞고 하교하는 일이 잦아지며, 무감각해졌다. 어느 날은 점점 익숙해지다가 울며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비도 나도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려 우산을 쓴다. 어떤 사람은 욕을 내뱉기도 한다. 빗방울은 내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울며 걸으니 내 얼굴 위로 떨어지며, 눈물을 감춰주었다. 소리 없이 우는 게 습관이 된 나는 비에 기대 울었고 그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울 수 있었다.
나를 토닥이던 그 소낙비. 사람들이 외면하던 그 소낙비. 그리고 나. 나는 어느새 소낙비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같이 울며, 걸었다. 내 신세가 딱했는지 내가 울자, 소낙비도 번개와 천둥으로 가슴을 찢으며 같이 울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나를 소낙비는 똑바로 봐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꺼려해도 너를 위로할 거야.”
빗방울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하얀 교복. 더럽다고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북북 빨았던 내 교복을 더럽히며, 너무 깨끗해지려 노력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교복 상의부터 치마까지 모두 적시며 온몸으로 위로했다.
토닥토닥 나를 위로하는 작은 몸들이 주는 위로를 받았다. 영혼 없이 괜찮다는 그런 위로보다 훨씬 나았다. 빗속에서 나는 나아지고 있었다. 맑은 날보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날보다 비가 오는 날을 사랑하게 되었다. 묘한 위안이 되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내리는 빗속에서 걸었다, 걸었다. 나는 힘을 얻어 세차게 걸었다.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꺼려져도, 그래도 여기 서 있을 거야.”
말은 하지 않았다. 속으로 세상에 그렇게 소리쳤다.
비를 맞기 전날, 어제 옥상에 올라갔다. 죽으려 올라갔지만, 죽을 수 없었다. 소리를 크게 질렀다. 목이 쉬도록 질렀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덥고 습한 공기와 미지근한 바람이 나를 스치고 갔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지만,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눈가도 스치며 갔다. 나는 죽을 수 없었다. 용기가 없었던 것도 맞다.
나를 환하게 비춰주는 불빛과, 찬란한 도시야경. 나를 위로하듯 눈물을 머금은 습한 공기. 뒷산 숲의 향기. 내가 소리치든 말든 상관없는 도시의 불빛과 풍경. 모든 게 나에게 조용히 죽지 말라고 소극적으로 발화하고 있었다. 환한 불빛들이, 언제나 나를 따라오는 달빛이 나를 비추며 서 있었다.
삶에서 꼭 사람들만 위로를 해주지는 않는다. 나에게 오는 모든 자연물이 조용히 위로한다. 안쓰럽게 우는 풀벌레도 내가 울기 전 울어준다. 학창 시절 위로를 못 받고 혼자 책을 읽으면, 책에서 위로를 얻고. 산을 타거나 언덕을 오르면 거기에서 오는 위로들이 있다. 일상을 살아내면 보상처럼 오는 위로들이 있다. 삶을 살아보면 위로처럼 오는 모든 순간이 있다. 모든 이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세상에 죽는 법은 없다.
<빗방울의 위로>
우산 쓰며 걸어가는 아이들 속
혼자 우산도 없이
하교하는 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고요하게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모두가 닿기 꺼려하는
내 어깨 위 머리 위
토닥이며, 토닥이며.
그날 하늘도 같이 울며
위로하며, 위로하며.
흐르는 눈물을
감춰주며
감싸 안으며
아주 오래도록
위로받으며
걸었다,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