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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하지 않는 사랑

4평 원룸이 가르쳐준 공존의 방식

by 코알코알

여자친구로서 남자친구의 취미에 간섭하는 사람이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남자친구의 취미에는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남자친구도 나의 취미에 대해서 엄청 개방적이고 열려있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사실 나와 남자친구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4평 원룸에서 동거한다. 문제는 남자친구의 취미는 식물과 동물을 키우는 일인 것이다. 어항 4개에 빨간 구피 가득, 물고기는 세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뱀이 무섭다는 나를 위해 작은 호그노즈 한 마리(그래도 무섭다). 도마뱀을 4마리 기른다. 메추리 사육장을 큰 것을 사 오더니 메추리를 4마리나 데려왔다. 식물은 식물원을 이루듯 늘어져 있고, 무드등 겸 식물등 하나와 같이 동거 중이다. 그 와중에 나는 거북이가 귀여워서 한 마리 데려오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또 물까치를 임시 보호한 적도 있다. 그리고 길고양이가 반지하 창문을 열고 갑자기 침입해서 밥을 먹고 간 적도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취미는 사람이 힘들 때, 위안이 되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굉장히 비싼 구피들이나, 물고기들 그리고 도마뱀 등을 데려오고 싶어한다. 그런 것들은 적게는 10만원 부터 많게는 50만원정도로 시작하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서 별로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남자친구의 돈인데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진로도 그쪽으로 잡고 싶어하던데 잘된일이지 하고 그냥 내버려둔다. 그 덕에 우리집은 희귀한 생물들로 넘쳐난다.


물고기가 새끼를 낳는다. 도마뱀과 메추리는 알을 낳는다. 뱀은 느긋하게 사육장 안에서 널브러져 있다. 식물의 꽃은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좁은 원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다른 곳으로 퍼지는 것이 생태계 다큐멘터리를 실시간으로 보는 것과 같다. 남자친구는 그렇게 태어난 새 생명을 주변에 나누기도 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취미는 돈이 드는 것을 하는 수동적인 취미만 생각했는데, 직접 소비하기도 하고 판매하기도 하는 점에서 능동적이라고 느꼈다.


새끼 때 데려온 메추리는 계속해서 알을 낳는다. 겨우 두 달 만에 성인이 될지 나는 전혀 몰랐는데, 노란 털을 벗고 그 위에 깃이 자랐더니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니 자연스러운 구애를 하고, 수컷끼리는 다투기도 하는 점이 신기했다. 귀여운 회색 메추리를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잘 그렸다고 바로 사진으로 찍더니 저장까지 했다.


문제는 좁은 원룸에 물건도, 사람도, 동식물도 많아서 바로 치우지 않으면 난민촌이 된다는 점에 있다. 우리 둘 다 별로 더러운 방을 신경 쓰지 않아 난장판으로 지낸 지 오래되었다. 요리는 해 먹다가 나중부터는 시켜 먹는다. 대신 새벽 2시까지 일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내가 청소나 설거지, 빨래 등을 한다. 처음에는 동물을 돌보는 것도, 집안일도 거의 남자친구가 했지만 지금은 내가 집안일을 한다. 집안일은 한 번에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오늘은 빨래와 설거지, 오늘은 전체적인 청소를 하는 식으로 해야 지치지 않는다. 책상을 먼저 치우다 보면 어느새 정돈되어 바닥 청소도 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깨끗한 집이 된다. 남자친구는 현재 졸업해서 술집의 점장이라 주 5일, 새벽 2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 생활비를 벌며, 취미도 놓지 않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하다.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취미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주로 아이패드로 그리는 일러스트 형식의 그림이다. 손 그림도 있지만, 디지털 그림이 훨씬 수정하기가 쉽다. 이런 나의 취미에 남자친구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는다. 내가 언급하며 남자친구의 취미를 억압하지 않듯이, 남자친구도 나의 취미를 존중하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게임이 취미이다.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에서 랭크가 다이아다. 또한 오버워치를 예전에 했는데, 프로게이머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으나 재수하고 있어 거절하였다. 예전부터 게임을 여자친구와 같이 하고 싶었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리그오브레전드를 같이 했다. 하지만 게임 고수들이 너무 많았다. 오래된 게임이고 인기 있는 게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 잘한다. 그래도 남자친구가 조언하는 것을 들으며 그대로 하면 서폿 차이로 이겼다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다. 비록 많은 캐릭터를 고르지 못하지만, 나는 그때만은 기분이 으쓱해진다. 물론 그 취미도 돈이 많이들어간다. 희귀한 스킨(게임 캐릭터 옷같은것을 말한다)을 사면 남자친구의 지갑은 텅 비어버린다.


남자친구가 동물을 키우는 취미에, 그리고 게임에 많은 돈을 쓰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남자친구의 돈이 걱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건 남자친구의 돈이지 내 돈을 끌어 쓰는 것은 아니니 전혀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냥 돈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머리로는 걱정이 된다. 그뿐이다. 근데 나는 간섭 안 하고 싶다. 이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뭔가 용품을 산다고 하거나 입양한다고 하면 자동 매크로처럼 잔소리가 나가기는 한다. 하지만 키우게 되면 그 뒤로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어차피 키우는 것은 남자친구이고, 돈을 들인 것도 남자친구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데려오자고 주장한 것은 거북이이다. 너무 뚱한 표정의 거북이. 그 거북이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뚱한 표정을 고수할 줄 알았는데, 등을 잡고 들었다가 놓으니까 휘적거리며 화내는 모습을 보고 한참 동안 우리는 웃었다. 저렇게 거만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거북이가 자기 고집이 있고 분노를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 웃겼다. 처음에는 뚱하고 고집 있고 권력 있어 보이는 모습에 사장님이나 대표님으로 지으려고 했다. 성격이 안 좋아서 김정은은 어떠냐고도 했었다. 권위적인 뚱한 느낌인 거북이. 그러나 남자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질색했다. 결국 테라핀 거북이의 이름은 세라핀과 용과 중에서 하나로 하기로 했다. 절대 사장님은 안 되는 것일까? 두 시간 동안 우겼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는 결국 용과라고 이름을 지었다. 과일 이름이니 오래 살 것이라는 남자친구의 웃음기 서린 얼굴이 어째 안심하는 것 같았다.


지금 사장님께서는 어항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어항을 휘젓고 다닌다. 구피와 같이 헤엄치고, 체리바브들과 함께 헤엄친다. 처음에는 뚱하고 화를 잘 내는 사장님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어항 속의 독재자 김정은이 된 것이다. 내가 작명은 참 잘한다. 성격이 잘 드러나는 유쾌한 작명을 했는데, 왜 남자친구는 몰라주는지...

좁고 좁은 원룸에서 새 생명은 매일 태어난다. 좁고 지저분했지만, 그 안에서는 생명의 순환이 있었다. 결국 그 방은 난민촌 같으면서도 작은 우주이기도 했다. 좁은 원룸 속에서도 풍요를 느끼고, 만족했다. 거북이의 이름은 용과가 되고 내가 원하는 이름은 못 지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좁은 원룸에서 배운 것은 간섭이 아닌 받아들임이 관계를 넓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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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831_032645591.jpg 남자친구가 키우는 구피 여러마리
KakaoTalk_20250831_032507164_05.jpg 왠지 뚱해보이는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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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01_225913223_03.jpg 남자친구가 키우는 예쁜화분
KakaoTalk_20250901_225913223_09.jpg 희고 예쁜 도마뱀. 수컷이다.
KakaoTalk_20250901_225913223_11.jpg 노란빛이 도는 도마뱀. 암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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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01_225913223_13.jpg 남자치구의 팔털... 앞으로 사진 찍을땐 털을 밀라고 해야겠다.
KakaoTalk_20250901_231125545_01.jpg 한 발들고 서서 자는 메추리
KakaoTalk_20250901_231125545_03.jpg 알을 낳은 메추리의 사진. 너희들 아직 어린데 벌써 낳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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