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보이는 사랑의 비밀
사람들은 원오브뎀(One of them)처럼 보이는 것을 걱정한다. 사랑도 인생도 자신을 증명하려고 사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나의 남자친구도 “우리의 사랑이 흔한 다른 사랑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하며, 흔한 다이아몬드 반지보다는 나중에 여자친구를 사귀면 주고 싶었던 탄자나이트 반지를 커플링으로 하고 싶어 했다. (탄자나이트는 희귀한 광석인데, 곧 있으면 광석 채굴이 중단된다고 한다). 결혼식도 국내의 흔한 결혼식장이 아닌 남국의 해변에서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흔한 결혼식을 해도, 그냥 랩 다이아몬드 반지나,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도 우리의 사랑은 흐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안다. 보석의 종류나 의식의 장소가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서사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 똑같은 모양의 사랑은 없고 결혼식은 잠시 드러나는 의식일 뿐이다.
사람들은 흔하게 사랑을 하고, 흔하게 프러포즈하고 사랑을 말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장난감이라면 잇자국도 있고, 기스도 있고, 발바닥에 쓰인 이름도 있다. 아무리 공산품이라고 내 것이 되면 비매품이 되고 싸구려가 아니라는 소리이다. 함께 나눈 시간은 흔적처럼 같이 쌓인다. 그래서 그 모든 흔적은 모두 모여 우리만의 추억이 되고 나의 뇌 속에 남아있다. 대체 불가능한 개인은 그렇게 내 인생에 존재하게 된다. 흔한 것 같지만 결국은 누구에게나 단 하나뿐인 사람이 있다. 토이 스토리에 나오는 버즈와 우디는 발바닥에 이름이 쓰여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앤온리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은 소화가 되어 서로의 일부가 된다. 만약 헤어진다고 해도 그 기억은 문신처럼 새겨진다. 그 사람을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신중해야 한다.
나와 남자친구는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남자친구는 할머니와 가족을 보고 싶은데도 나의 곁을 지켰고, 술집의 진상을 만나면서도 알바를 하며 나의 곁에 있는다. 술집 알바가 끝나고 돌아가는 동안 새벽 냄새를 맡고, 매미 소리를 들으며 걷고 얘기를 한다. 그때 나눈 얘기와 공기의 온도는 아직도 생생하다. 남자친구는 인기 있는 대중가요를 듣고, 나는 인디 밴드 음악을 듣는다. 서로 나눈 음악 취향은 나에게 있어 흔적이고 기록이다. 나는 검정 치마를, 가을방학을 그리고 다른 인디 밴드 음악을 듣는다. 남자친구는 유행가를 듣는다. 팝송이나 유명한 노래를 들을 때 나도 같이 듣는데, 남자친구와 떨어져 있을 때 나는 그 노래들을 들으며 남자친구를 생각하기도 한다. 남자친구가 듣는 음악도 내가 듣는 음악도 누구나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와 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남자친구도 어떤 장소에 가는 건 중요하지 않고, 누구랑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살면서 기쁜 날보다는 힘든 날이 많았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위로해 주고 사랑해 줬다. 나는 남자친구를 처음 사귀었을 때, 그가 나를 이해해 줄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이야기를 꺼내면 도망칠 수도 있고, 끝내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문득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원앤온리의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겉으로만 평범하게 웃고, 흔한 연애처럼 흘러갔다면, 그 사랑은 단단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원앤온리의 관계란, 특별한 이벤트나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서로의 진실을 감당하고도 남아있는 선택에서 비롯된다. 말하지 않았다면 안전했겠지만, 말했기에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결국 원앤온리는 드러냄과 수용의 과정에서 생겨난다. 이해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사랑의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이 모여 ‘우리’라는 유일한 서사가 완성된다. 남자친구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힘들었던 일이 많았다. 세세하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의 인생에도 잔기스가 있다. 장난감에 남은 잔 흠집처럼 그 흔적은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다.
사랑은 너와 내가 함께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단 하나의 사랑은 지금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