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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무게

같이 버텨내며 사는 삶

by 코알코알

남자친구는 졸업했는데도 본가에 가지 않았다. 아직 졸업하지 않은 나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나랑 같이 살면 생활비가 든다. 알바도 해야 한다. 취업을 바로 하는 것보다 미래가 불확실한데도 알바를 한다. 술집에서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도 거기서 사람들과 항상 부딪혀야 하는데도 버틴다. 남자친구를 키워주신 것은 할머니이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데도 꾹 참고 나와 같이 삶에 집중한다. 술집 사장님은 성격이 험악하다. 가만히 있어도 욕 들어 먹기 일쑤이다. 그런데도 나를 보며 버틴다.


같이 새벽에 걷는 것은 즐겁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불빛은 더 빛나고,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정적에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깔린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는 벌써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지금은 젊지만 언젠가 주름이 깊어지고 흰머리가 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겠지만 처음처럼 뜨겁지는 않을 것이다. 잔잔하게 부는 새벽바람과 같은 사랑을 하겠지 분명.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사랑도 흘러가다 결국에는 평온한 바다로 도착하겠지. 평온한 중년의 사랑을 할 것이다. 서로 흰머리를 뽑아주고 새치 염색을 해주는 사랑을 하고 싶다.

노인이 되면 어떤 사랑을 할까? 손등에도 발등에도 주름이 깊다.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지만 나는 여전히 변해버린 그를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손등의 주름을 매일 쓰다듬는다. 느긋하게 늙은 개를 산책시키고 개와 벤치에 앉는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 신이 나면 다른 노인들과 트로트나 뽕짝도 듣는다. 공원에서 한바탕 웃음꽃이 피면 산책을 그만하고 집에 들어갈 것이다. 노년에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산책도 하고 취미도 같이 하고 싶다. 문화센터에도 같이 다녀서 향 좋은 비누를 만들어야겠다. 몸도 손도 잘 씻겨주는 예쁘고 특별한 비누. 주름진 손과 몸을 구석구석 씻겨줄 비누.


늙어서 걷기 힘들어지면 커플 지팡이를 맞추어야겠다. 처음 같이 맞춘 커플링을 추억하면서, “여보. 우리가 어느덧 지팡이까지 커플로 맞췄어.” 하며 서로의 굽은 등을 쓰다듬을 것이다. 슬픈 시절, 힘든 시절 같이 있어 준 그를 위해 나도 그가 슬플 때는 같이 있어 주려 한다. 나는 병으로 일상이 지옥 같았다. 하지만 그 삶에 사랑이 있어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편지를 한 편 써서 끝맺으려 한다.



내 사랑에게

안녕,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아득한 시간이 흘렀어.

대학생 때 우리는 처음 만났지.

이미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말이야.

삶이 우리에게 좋은 추억을 주기도 했어.

하지만 힘든 순간들도 많이 주었어.

그런데도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우리가 함께 있어서 그랬을 거야.

내가 혼자였으면 이렇게 멀리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주저앉아 울고 있던 나를 데리고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고마워.

이기적이고 나만 알던, 사랑을 모르던 나를 참아줘서 고마워.

나에게 사랑을 주고 내 아이들을 사랑해 줘서 고마워.

당신이 이렇게 나를 사랑해서 나는 한 여자가 될 수 있었어.

나도 항상 당신이 병이 들든, 사업이 망하든, 그냥 괴롭고 이유 없이 힘들든

그냥 옆에 있고 싶어.

시간이 우리를 갈라놓는 순간까지 이 세상에서 살고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았듯이 하늘 위에서도 살아보자.

죽어서도 같은 곳에 있을 거라고 확신해 나는.

내가 진짜 사랑하는 한 남자에게

진심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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