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자해였다, 사랑이 그것을 멈췄다
우선 조현병약과 정신과에서 받은 다이어트 약은 같이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다이어트약은 도파민 수치를 올리는 흥분계 약물이고, 조현병약은 도파민 수치를 낮추는 진정계 약물이기 때문에 그 둘의 충돌은 위험할 수 있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도 중추신경계 자극제 계열 약물 사용을 지양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둘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심혈관계 부담이 많이 증가하므로 따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다이어트약이 정말 필요했다. 조현병 약으로 인해 늘어난 체중과 살은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병이 조금씩 나아지는 대신 거울 속 나는 자꾸만 멀어졌다. 병보다 무서워진 것은 못생겨진 나였다. 나는 대학병원에서는 안 된다고 처방을 안해주는 약을 조현병 사실을 숨기고, 다이어트약을 처방해 주는 곳으로 가서 약을 많이 처방해달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처음에 눈치채지 못하다가 어느 날 그가 물건을 찾다 내 서랍을 열고는 약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물어봤다.
“뭔데 이렇게 많아?”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거? 예전에 받았던 거야.”하고 그냥 웃으며 넘겼다. 그는 이게 뭔지 집요하게 캐물었고, 결국 정신과에서 주는 다이어트약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심한데?”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검색하기 시작한다. 나무위키부터 해서, 챗지피티나, 인터넷 신문, 학교에서 볼 수 있게 구독하는 논문들을 싹싹 뒤진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병원에 가는 날이 마침 다음이라 같이 병원에 가서 맛있는 빵이나 먹고 오자고 말을 돌렸다.
정신과 진료가 시작되자, 그는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 친구는 다이어트약을 먹고 있는데, 근데 여기서 처방받은 게 아니지 않나요? 약이 엄청 쌓여있어요.”
의사 선생님은 놀라며 되물었다.
“그거, 어디서 어떻게 받았어요?”
나는 거짓말 하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며 받은 약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배신감에 몸을 떨며 안 좋은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지금 복용 중인 조현병 약물과 병용하면, 사고위험이 커요. 불면증이나 망상 재발도 심해지구요. 절대 복용하지 마세요.”
진료실 문을 나서고 나는 화를 버럭 냈다.
“왜 얘기하고 그래? 왜 나한테 말도 없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가!”
나는 울먹였다. 그게 배신 같았고, 나의 몸을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았다.
그는 조용조용 말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이쁜데... 그리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위험하다잖아. 역시 물어보기 잘한 거 아니야?”
나는 예쁘다는 그 말이 거짓말 같았다. 위로 같기도 했고, 무책임한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울기 시작했다.
며칠 뒤 그는 내 약을 조용히 숨겼다. 말 하나 없이.
나는 또 화를 냈다.
“이거 내 몸이잖아. 내가 알아서 해. 너가 뭔데 내 마음대로 버려!”
그는 대답 대신 내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 속에 그가 입을 열었다.
“운동하자. 나랑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살아가자. 약으로 사는 건 그만하자.”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왔다. 동네 골목을 하염없이 걸었다. 바람이 불고, 내가 숨겨둔 약은 이제 사라졌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안 치웠으면 먹었겠지 하는 생각이. 그건 자해였다. 내 몸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이름으로 포장된, 은밀한 파괴.
그 파괴를 멈추게 한 건, 의사도 약도 아니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었다. 약을 버린 손으로 나를 붙든 그 사람이었다. 사랑은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다이어트약이 조현병 약보다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 사람. 내가 화를 내고, 미워해도 돌아서지 않는 그 사람.
그의 손이 참 따스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무작정 이해하는 사람보다, 나를 지켜주기 위해 미움을 감수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있어 나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나를 미워하며 삼키려 했던 약 대신, 지금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꾹꾹 눌러 씹고 있다. 같이 살아가자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확실한 사랑의 고백이었다. 나는 아직 나를 완전히 사랑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나를 해치지는 않는다.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은, 그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