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함께는 말보다 먼저 마음이 닿는 일

정신질환자와 보호자인 남자친구

by 코알코알

병원에 갈 시기가 다가오고, 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는 병원이 무섭지 않았는지 나와 같이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정신 병원 자체가 우중충하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중충하지 않고 오히려 번쩍번쩍한 경우가 많다. 정신과에 처음 오는 사람의 심리적 장벽을 깨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정신과 자체가 환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도 해서이다.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깨끗하고 좋은 곳이라면 믿고 맡길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꽤 멀리 있는 대학병원에 가기로 했다. 먼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드디어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커다란 건물과 조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큰 병원에 갈 때 위압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일상이다. 병원 내에서 대기 번호를 받고, 병동 내 스타벅스에 왔다.


그는 나랑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좋았는지 들떠 있었다. 왜냐고 물으니 나와 더 친해진 느낌이라 그렇다고 한다. 병원을 같이 간다고 했을 때는 놀라웠다. 같이 가준다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도 같이 가주지 않았다. 병을 알리고 나서 부모님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과도 같이 병원에 가지 않았다. 부모님도 초반에나 같이 갔었다, 하지만 병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는 나는 씩씩하게 혼자 가야 했다.


스타벅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료 하나씩을 골랐다. 그리고 병동 내 베이커리에서 빵도 많이 골랐다. 병동에 데려온 것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것도 조금 지나고 익숙해지니, 어쩐지 데이트처럼 느껴졌다. 배가 적당히 불러 기분이 좋아졌을 때, 대학병원 정신과 부서로 다시 들어갔다. 몇 분 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 가볼게.”


그는 나의 팔을 잡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그의 팔에는 힘이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봤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도 같이 들어가자”


같이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적잖이 놀랐다. 여기까지만 와준 것도 감사한데, 이 이상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정신질환자인 사람 이전에 나는 그에게 여자였다. 아마 그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이후에 관계가 소원해지면 어떡하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 된다고 말했지만, 상대는 완고한 고집의 사나이다. 저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했으리라. 자기 고집이 꺾일 것 같으면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데도 뛰어나다. 여기서 천하제일 논리 베틀을 벌일 수는 없었으므로 간단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면 내가 납득을 하고 여기 남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기다리고,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머리가 하얘지고 조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논쟁을 끝내는 방법은 언제나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오늘도 그에게 지고,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문이 달칵하고 열리고, 치료자가 앉을 수 있는 의자와 보호자가 같이 앉는 의자가 있었다. 나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고 의사 선생님도 뒤이어 인사를 했다. 그와 같이 왔다는 사실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


나는 불안하지도 않고, 요즘은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약이 잘 맞는지 요즘 불편한 것이 없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일상대화들. 의사 선생님은 예후가 아주 좋다고 말씀하고 계셨다. 그가 있다고 해서 억지로 막 지어내거나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다.


“같이 오신 분은 궁금하신 점 있으세요?”


“아 네, 저는 이 친구와 같이 연애하는데,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은 남자친구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이내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경청하며 들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나의 눈은 시렸다. 내 병을 낫게 해줄 수는 없어도, 함께 앓아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창밖을 봤다. 햇빛이 병원 창문을 투과해 진료실의 하얀 벽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조금은 따뜻해 보였다. 그 그림자는 마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병이라는 이름 아래에 움츠렸던 내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함께 있다는 것은 말보다 먼저 마음이 닿는 일인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병은 나를 약자로 만들었다. 그게 옛날에는 무력하게만 느껴진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내 마음을 닫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어 주었고, 그게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평범한 한 여자로, 연인으로 만든다.


어떤 사랑은 함께 아프고 함께 견디는 일로 완성되기도 한다. 나는 그의 옆에 가면 병을 가진 연인이 아니다. 또한 내가 매월 가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도 평범한 일상으로 봐주었다. 나는 사랑을 주고받는 그저 평범한 사람임을 배우고 또 배운다. 그 사람은 나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어 주었다. 그것이 그의 사랑 방식이었다.

keyword
이전 08화사랑은 이유없이 머무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