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너는 14살이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너는 매일 혼자였었어. 풀벌레가 유일한 말을 거는 사람이었어. 13살의 여름, 그 끈적한 여름날 풀벌레 소리가 들렸었지. 초록색 방수페인트를 덕지덕지 발라서 울퉁불퉁한 옥상에서 너는 분명 그렇게 말했어. 어쩌면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했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쉼을 얻지 못하는 아이는 없다고 말했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니? 나는 죽으러 가는 길에도 이상하게 풍경이 눈에 들어오던데. 찬란한 불빛을 가로등은 내뿜고, 자동차들은 휙휙 지나갔지. 가로수는 바람에 흩날리고, 행인은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더라.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현실이 너에게는 더 억울하고 외로웠겠구나.
너의 주변에는 제대로 된 어른들이 없었지. 선생님들마다 학교폭력영상을 공개적으로 반아이들에게 보여준 이유는 뭘까? 아마 아끼고 사랑하는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해서, 너는 누가 봐도 위태했으니까 하고 답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 영상은 반아이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지. 너도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선생님은 사실 너가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였을 거야. 선생님의 편은 있었어도 아무도 너의 편은 없었겠지. 영상을 틀어놓느라 정작 너는 교실에 있을 수가 없었어.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다가 영상이 끝날 때 쯤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돌아갔잖아.
옥상에 올라가보니 어땠니? 겨울에는 차가운 눈송이가 후드티 모자에 담겨져왔어. 여름에는 모기가 잔뜩와서 너를 가렵게했지. 모기만 온게 아니야. 나비도 날아왔었어. 팔랑팔랑 예쁘게 날아다니는 나비는 너를 스쳐갔어. 그런데 풍경은 어땠어? 겨울밤은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웠지. 너의 검은 머리칼처럼 밤하늘은 검어. 지금과는 다르지. 왜냐하면 지금은 새치가 희끗희끗나잖아. 별은 반짝이고, 바람은 차갑지만 머리도 식혀주고. 가게의 간판은 별과 달보다 빛나. 살아가게 된 계기는 다들 살아내려고 빛을 내서 그래. 가로등이, 간판들이 빛이 나더라. 다들 살아내려고 빛을 낸다는 생각에 억울해서 살았어.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이 내 현재 모습이, 과거가 어떻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했을거야.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게 생각보다 세상에 흠없는 사람은 없다는 점을 기억해 줘. 그리고 왕따경험은 흠이 되지 않더라. 학교마다 하나씩 있는 것이 왕따고, 우리나라에 왕따가 얼마나 많은데. 생각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많아.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어. 그사람이 악한 것보다 약한거야. 모든 사람이 아마 너와 진지하게 관계를 맺지는 못할거야. 하지만 그건 너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해력의 문제일거야. 너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과만 진지해지면 되고, 물론 수가 적겠지만 충분해.
그렇다고 너의 현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겠지. 하교때까지 아무와도 이야기 하지 못한 적도 많지. 양말이 없어 양말을 안 신고 가면 다들 피했지. 더 심한 괴롭힘과 놀림이 있었지. 내가 봐도 그때의 나는 불쌍하고 불행했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지.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 너가 버틴만큼 행복은 분명 온다. 오히려 행복의 크기가 작아도 크게 다가온다. 행복을 연습하도록 기다려 준 많은 이들이 있어. 지금 나는 옥상에 선 사람이 아니라 걸어가는 행인이야. 내 곁에는 현재를 사는 많은 걸어가는 행인이 있고 모두 자기의 길을 가느라 바쁜 사람들이야.
불행하다고 해서 지금 뛰어내리지는 말자. 확실히 지금 모든게 다 힘들겠지만, 너만의 풍경을 보며 견디자. 우울할수록 삶에 집중하기보다 흘려보내고, 그냥 풍경을 보는거야. 차가운 밤공기와 간판을 보며 힘내자. 그때 너가 적은 돈으로 간식도 안 사먹고 했던 일은 뭐였어? 반짝거리는 스티거를 모으고, 예쁜 필기구를 샀어. 그리고 책을 열심히 읽으며, 상식을 쌓았지. 그리고 괴롭히던 대가리 꽃밭인 애들에게 이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주었지. 그건 상식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며, 속으로는 통쾌함을 느꼈지. 나만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견딜 수 있었어. 너도 그럴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