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표류기 | 2편
"월급날이 기쁘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월급이 카드 대금으로 사라질 줄은 몰랐어요."
1. 월급의 기쁨은 잠시뿐이었어요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정말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회사 앞 참치집에서 고급회를 먹으면서
“이제 내 힘으로 먹고사는구나” 싶었죠.
그 무렵, 카드 영업을 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니 월급이면 프리미엄 카드 만들 수 있어.
한 번에 한도를 올려두면 나중에 편해.”
친구는 그렇게 말하며 신청서를 내밀었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사인을 했어요.
일반카드도 아닌,
연회비가 높은 프리미엄 카드였어요.
카드를 손에 쥐는 순간,
뭔가 급이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그게 함정의 시작이었어요.
2. 홀수달엔 한숨, 짝수달엔 숨통이 트였어요
그때 우리 회사는 매월급여가 달랐어요
짝수 달에는 많은 상여금이 나왔어요.
즉, 한 달은 한숨 쉬고,
그다음 달은 숨 좀 트이는 패턴이었죠.
그런데 상여가 들어오는 달은 마음이 풀어졌고,
그만큼 더 쓰게 됐어요.
다음 달엔 또 숨이 막혔고요.
카드는 늘
“괜찮아, 지금 쓰고 나중에 갚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소비에 죄책감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갚을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3. 리볼빙은 나를 위한 제도가 아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카드값이 월급을 넘었어요.
당장 다 갚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때 카드사에서 문자 하나가 도착했어요.
“리볼빙 등록 시 최소금액만 결제 가능,
나머지는 다음 달로 자동 이월됩니다.”
그 문구가 어쩐지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부담을 덜어주는 서비스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사실은 이자가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구조였어요.
그때부터 저는 미래의 나를 담보로
현재를 유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4. 내 돈처럼 썼던 그 돈의 정체는요
신용카드는 제가 가진 돈보다
더 많은 걸 갖게 해 줬어요.
하지만 그건 결국
‘내 돈처럼 보이는 빚’이었어요.
카드값으로 월급이 사라지는 달이 계속되자,
삶이 점점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문득 깨달았어요.
이건 내가 원했던 어른의 삶이 아니라고요.
마무리하며
그 시절의 나는,
신용카드 한 장으로 어른이 된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갚지 않아도 될 빚을 구분하는 일이라는 걸
훗날이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했던 소비보다
그 소비에 아무렇지 않았던 마음이 더 무서웠던 것 같아요.
돈은 삶의 도구일 뿐인데,
나는 어느 순간 그 도구에 끌려다니고 있었어요.
당신의 지갑 속에도, 혹시 그런 카드 한 장이 무심히 들어있지는 않나요?
‘내 돈처럼 보이는 빚’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