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표류기 | 4편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돈이 없어서 힘든 게 아니라,
돈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더 무서운 거였다는 걸요."
1. 월급은 스쳐 지나가는 숫자였어요
그때 내 통장은 매달 비슷한 패턴이었어요.
월급날 아침, 입금 알림 문자.
그날 저녁엔 자동이체, 카드 대금, 대출 이자 빠져나간 문자.
출근길에 들렀던 편의점에서 카드를 결제할 때 이미 알고 있었어요.
‘이 돈은 내 돈이 아니야’라는 걸요.
지출을 기록하지도 않았고,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한 달을 버티는 게임처럼 살고 있었어요.
2.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어요
어느 날 입사동기들과 모임이 있었어요.
각자 5만 원씩 걷어서 밥값을 계산하기로 했죠.
근데 그날, 제 지갑엔 현금이 만원도 없었어요.
월급은 이미 카드값으로 빠져나간 지 오래고,
다음 월급날까진 며칠이나 남았는데
잔고는 바닥이었어요.
순간 머리를 굴렸죠.
'내가 카드로 결제하고,
동기들 현금을 받아가면 되겠지?'
그렇게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야, 내가 카드로 긁을게. 너네 현금 줘.”
하고 말했어요.
사실 그건 '내가 내야 할 몫조차 없었던 사람의 방어적 선택'이었어요.
그 순간, 아무도 눈치채지 않았지만
저는 속으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어요.
3. 바닥을 찍고 나서야 눈이 떠졌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돈이 없다는 사실보다,
계획이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날 동기들은 펀드니 적금이니를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다음 달 카드값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의 월급은 미래를 위한 재료였는데,
내 월급은 ‘과거의 내 소비를 갚는 돈’이었죠.
그때 문득 무서워졌어요.
지금도 이 모양인데,
앞으로 뭔가 더 커지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싶었거든요.
4. 그날 이후, 돈을 마주 보기로 했어요
지난 3개월간의 지출 내역을 적어봤어요.
처음으로 내가 ‘돈을 쓰고 있는 방식’을
눈으로 확인했어요.
이자, 택시비, 자동결제 해지 안 된 서비스들.
그날 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정리했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도망치지 않기로 했어요.
회사에서 업무폰을 주었기에
개인적으로 쓰는 폰을 가장 낮은 요금제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건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정말 오래 기억에 남는 시작이었어요.
마무리하며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똑똑한 척, 여유 있는 척 굴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신호를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었어요.
진짜 각성은,
남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때’ 찾아오더라고요.
가장 어른스러운 순간은 내 상황을 정확히 직시하고,
조금씩 바꿔보겠다고 마음먹는 때 시작되었어요
혹시 지금의 당신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이거나
상황을 피하고 있진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