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나는 한나절 동안 얼마나 더 자랐을까. 책가방이 흔들리도록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런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어야 할 꼬맹이는 온데간데없고, 아버지는 담벼락 너머 바다만 바라보고 계셨다. 순간,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빠, 꼬맹이 어디 갔어요?”
“송아지가 뽑아 먹어버렸다.”
나와 동생은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정말 눈치 없이 크게 웃어댔다.
“으하하하! 이히히히!”
그도 그럴 것이, 그 녀석은 송아지가 한 입에 털어 넣기에 적당했다. 게다가 우리의 웃음은 단순한 장난스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며칠 동안 아버지에게 외면받았던 남매가 내지르는 기쁨의 환호성이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 후 며칠을 학교 가는 길 논두렁에서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고, 아버지 역시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누구에게 서운함을 토로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아침부터 마당에서는 자잘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서 숙제를 하던 나는 아버지께 들킬까 봐 꼭꼭 닫아두었던 방문을 삐죽이 열었다. 마당 한가운데서 아버지가 뭔가를 열심히 하고 계셨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내게 아버지는 이미 시선을 두고 계셨다. 하지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이상하다. 뭘 하시는 거지?’
사실, 우리 아버지는 참 특이한 분이셨다. 12살의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어른이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셨고, 애정 표현도 서툴렀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가 그 반대였기 때문에, 칭찬받는 욕구는 어머니를 통해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가끔씩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응, 잘했다”라고 짧게 말씀하셨고, 어린 나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았다. 그것은 이웃집 아이가 매일 듣는다며 자랑하던 흔한 칭찬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아버지는 숙제하는 나와 동생을 모른 척하며 뭔가를 하고 계셨다. 나는 책가방을 둘러메고 촐랑촐랑 아버지 곁으로 갔다.
“잉? 아빠, 이게 뭐예요?”
“비아나무다.”
“이게 산다고요? 고작 커다란 이파리 두 장뿐인데요?”
“절대 만지면 안 된다. 함부로 물을 줘서도 안 되고, 구경할 때도 저만큼 떨어져서 해. 행여나 밝으면 혼날 줄 알아.”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버지는 가슴이 철렁하셨을 것이다. 우리 남매는 아무도 예상치 못할 엉뚱한 말썽을 잘 부리는 귀여운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비아나무를 송아지가 홀랑 먹어버린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송아지가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터라 정신없이 날뛰던 녀석이었다. 그 송아지는 우리 아버지에게 있어서 큰언니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줄 참 귀한 짐승이었다. 그러니 송아지가 비아나무를 꿀꺽 삼켜버린 모습에 아버지는 기가 막히셨을 것이다.
“송아지가 뽑아 먹어버렸다.”
아버지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의 표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허무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난을 초월한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상황은 정말 우스웠다. 비아나무의 열매는 노란색에 먹음직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다. 나는 벌써 머릿속으로 노란 비아열매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건너왔다는 낑깡나무를 심고 계셨다.
어린 나에게 어른이라는 존재는 잔인한 평가를 받았다. 어른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반복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매일 일탈을 시도하고 계셨다. 조용히 비아나무를 심고, 다시 낑깡나무를 심으며 온 신경을 그것들에게 쏟아붓는 일. 그것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 만화책을 보던 나의 작은 반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일이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라는 시간의 문턱에 서 있다. 나 역시 언제든 송아지처럼 내 열정을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일들을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처럼 다시 새로운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키워낼 것이다. 어른이란, 작은 시련 따위에 소중한 꿈과 열정을 빼앗기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하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