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Monet. 흐릿함이 나를 안심시키는 순간
모네는 내 뒤통수를 가장 세게 때린 작가다.
수련으로.
모네는 내게 평온한 아름다움의 대명사였다.
수련, 해돋이, 성당, 건초더미...
누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에이, 전공자치고 너무 평범한 취향 아냐?” 소리를 들어도 난 망설임 없이 모네라고 말했다. 미술전공생의 최애치고는 좀 진부한 대답일지 몰라도. 그만큼 모네의 색은 내게 편안함을 주는 미감의 언어였다.
그런데 뉴욕 모마에서 처음으로 모네의 수련을 가까이서 마주하고, 나는 당황했다.
사진에서 본 그거랑 좀 다른데?
터치는 거칠고. 경계는 녹아버린 상태.
—이게 수련이라고?
물론 강과 연못은 다르다.
연못은 담요 같고, 강은 이불 같달까. 하나는 가만히 덮고 있을 수 있고, 하나는 자꾸 어깨에서 흘러내린다. 그런데 캔버스라는 네모 안의 물빛을 보니 갑자기 부모님 집 거실 창이 떠올랐다. 네모난 유리 너머 보이던 조용한 물 말이다.
그곳에 가면 가만히 앉아 물을 빌려볼 때가 있다. 양쪽으로 난 창에 물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자리. 새벽이면 잿빛 물 위로 옅은 보라색이 내려앉고, 일몰 때면 분홍이 길게 스며든다. 같은 물인데도 하늘의 색이 달라지면, 물도 다른 표정이다. 때때로 빛은 앉는다기보다, 조심히 미끄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흘러온 반짝임이 가만히 내려앉아,
잠시 주름졌다가,
다시 스르륵, 퍼지고
이내 아무 일 없던 듯 녹아드는 느낌.
마치 마음과 닮아 있다.
이상하게도 모네의 수련이 그걸 떠올리게 했다.
빛이 물 위에 앉는 순간을 옮긴 듯한 장면.
나는 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모네의 그림 앞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조론이니 작가론이니 전공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은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모네를 제대로 번역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굳이 이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빛 같았고, 사라졌다 다시 감도는 안개 같았다. 이해하려 할수록 더 멀어지지만, 그렇기에 담담하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그녀의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
예술을 굳이 의미로 뒤덮어 흐려놓지 말고,
그 감각적인 표면이 그저 드러나도록 두면 된다.
그 말은 나와는 먼 언어 같았지만, 어쩐지 모네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모네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을 일처럼 읽어내려 하던 나에게, 모네는 처음으로 도망칠 수 있게 해 준 감정이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받는 느낌. 이런 감정을 저각성 긍정 정서(Low-arousal positive)라고 부른다. 미지근하게 지속되는 편안함. 딱히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은 감정의 잔상 같은 것.
모네는 수련을 참 많이도 그렸다. 평생에 걸쳐 250점 넘게 그렸으니. 그중엔 수련만 있는 것도 있고, 다리를 배경에 담은 것도 있다. 어떤 건 물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해가 들고, 안개가 지고, 물빛이 퍼지는 동안 모네는 캔버스 앞에 서있었다.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그는 더 이상 수련의 디테일을 그릴 수 없었다. 경계는 무너졌고, 색은 뭉개졌다. 수련은커녕 물인지 구름인지도 헷갈릴 정도로. 러프한 붓터치와 색의 덩어리들. 가까이서 들여다볼수록 구분되지 않는 것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감정의 수면처럼 출렁이는 물빛.
흐릿하지만 분명 수련의 풍경이다.
그건 멀리서 더 가까워지는 감각이다.
나는 검은색을 쓰지 않는다.
검은색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Claude Monet
1874년, 모네는 《Impression, soleil levant》(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을 전시한다. 항구의 해돋이를 그린 그림이었다. 수면 위로 퍼지는 빛과 안개, 그 속을 흐릿하게 움직이는 배의 실루엣. 모든 것이 뿌옇고 불분명했다. 그림을 본 비평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조롱을 퍼부었다.
"인상? 확실히 인상은 있더군요. 그림이라기보단 벽지 초안 같던데요?"
그 조롱에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태어났다. 명확하지 않아서 비웃음의 대상이 됐고,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 무시받았다. 하지만 모네는 그 표현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는 정확함으로는 옮길 수 없는 게 있다고 믿었다.
인상주의를 이야기할 때 모네와 함께 꼭 거론되는 이름이 있다. 르누아르다. 두 사람은 나란히 불렸지만 서로 너무 달랐다. 예민한 완벽주의자 모네, 다정한 사교가 르누아르. 모네가 빛의 흔들림을 사랑했다면 르누아르는 빛이 머문 사람을 사랑했다. 시선은 다르지만, 빛을 따라가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게 인상(Impression)이었고, 흐릿함은 그들에게 선명한 감정의 언어였다.
그들에게 다름은 시너지가 되었다. 모네는 르누아르에게서 온기의 언어를, 르누아르는 모네에게서 섬세한 시선을 배웠다.
모네는 그를 “가장 위대한 화가였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헌사가 아니라, 존중이 택한 언어였다.
모네의 그림에는 정말 검은색이 없다. 그림자의 가장 어두운 부분도 푸른빛, 진한 초록이다. 그는 빛이 만들어내는 색의 층위를 담아냈고, 자연 속 어떤 어둠도 완전한 암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태도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그런 그를 아는 친구들은 죽음의 순간조차도 그를 밝은 색으로 감싸고자 했다. 그래서 모네의 관을 덮은 검은 천을 걷어내며 말했다. “색색의 천으로 덮어 달라. 그는 그렇게 떠나는 게 어울린다.”
그에게 검은색은 어둠이 아니라 무감각이었고, 빛을 잃은 색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색이 아니었다.
모네의 수련.
모네도, 프랑스도, 연꽃도—
어떻게 보면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이 풍경이 내게 기묘한 위안을 주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흐릿함 때문일까.
나는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한테든 남한테든 피해만 주지 않으면, 뭐 괜찮지 않을까. 그런 식의 줏대 없는 멘탈로 살아왔다. 그런 흐릿한 태도는 살아가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때로는 확신에 찬 사람들을 보면 궁금해졌다. 아니, 부러웠다.
저 사람은 세상이 나보다 선명해 보이는 걸까?
저 단단한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그런 나를 모네의 수련에서 발견했다면 좀 웃길까. 멀리서 보면 평온한 색을 한 채 태연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경계도, 형체도 없이 애매하게 뭉개져 있는 모습. 그건 내가 생각하던 나의 자아와 닮아 있었다. 뭐든 관찰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붙이려는 강박적인 내 태도와는 또 다른 얼굴.
그런데 수련을 가까이서 본 순간, 어쩐지 그 흐릿함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 뒤통수를 때렸던 그 낯선 모호함이 말이다.
그는 캔버스 위에 수련의 꽃잎이 아니라, 물 위를 스쳐간 빛의 잔상을 그리고 있었던 거였다. 그 흐릿함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검은색이 없어도 나쁘지 않다고.
어쩌면 모네는 라벨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그렸는지 모른다.
이름 붙이지 못하는 마음도 괜찮다고.
뭉개져 있어도 살아 있는 거라고.
모든 걸 구분 짓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그렇게 둬도 괜찮다고.
형체 없이 번지는 색이라도, 겹치면 결국 멀리서 하나의 물빛이 되니까.
멀리서 가까워지는 것.
이름보다 먼저 도착한 순간.
그게 내가 본 모네의 수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