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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새벽은 무슨 색일까

Vincent van Gogh. 빛이 물러난 자리에 생겨나는 것

by 한이람




도쿄의 새벽은 서울보다 조용하다.





바람이 고양이처럼 지나가고, 신호등조차 졸린 표정으로 깜박이는 것 같다. 야경의 반짝임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사실 밤보다 새벽이다.


새벽은 모든 게 조금 더 비어있다.

불빛도, 사람도, 소리도 그렇다.


심지어 색도 조용한 시간.

밤의 검정이 물을 탄 잉크처럼 천천히 흐려지면, 투명해진 어둠 위로 조용히 아침의 색이 번진다.



그런데,

고흐의 새벽은 무슨 색이었을까?




도쿄에서 만난 고흐


내가 생각해도 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새벽에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어제 고흐전을 보고 온 영향도 있을 테고.


일 때문에 도쿄에 머무는 중인데, 우연히 도쿄도미술관에서 고흐전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일정 상 여유는 별로 없었지만 괜히 궁금해졌다.


출장 와서 고흐를 마주칠 줄이야?


도쿄에서 고흐?

흠, 생각해 본 적 없는 조합인데.


곧 떠오른 게 있었다. 고흐는 일본의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한 판화)를 수집했고, 그 매력에 빠졌던 사람이었다. 19세기 서유럽 화가들은 일본의 풍경과 색감에 큰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자포니즘(Japonism)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고흐는 일본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본도 고흐에게 상당히 진심이다. 전시가 열리면 100미터 넘는 줄이 늘어설 정도라고 하니까.



결국 난 도쿄에서 고흐를 만나러 갔다.




고흐의 새벽은 무슨 색일까

Montmartre Molens en Moestuinen (1887) Ⓒ Vincent van Gogh


어제 가장 오래 들여다본 건 이 그림이었다.

몽마르트르의 풍차와 채소밭.


제목은 몰라도 그림을 보면 익숙할지도 모른다. 언뜻 보면 평범한 농장의 풍경. 하지만 화면 전체에 번진 옅은 하늘색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빛이 막 떠오르기 직전의 새벽일까? 아니면 막 해가 뜬 뒤?


회색과 푸른색이 번지듯 섞이고, 길을 따라 흐르는 채소밭은 이른 아침의 냉기를 머금고 있다. 붓끝으로 찍은 점묘들이 화면 위에 진동하듯 퍼져 있다. 멀리 보이는 풍차는 바람이 아닌 고요함을 따라 회전하는 듯하다. 익숙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같기도, 그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고흐의 눈으로 본 새벽은 이런 색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태양의 화가

La nuit étoilée (1889) Ⓒ Vincent van Gogh, MoMA


우리는 보통 고흐를 떠올릴 때, 해바라기, 노랑, 강렬한 붓터치, 별이 빛나는 밤을 말한다. 레고로도 조립되고, 피규어로도 나오고, 머그잔에도 인쇄되는 유명한 이미지들. 그 익숙함 속에 가려진 건 그의 색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고흐는 모방으로 자신의 색을 찾아낸 사람이었다. 파리 시절, 그는 쇠라의 점묘법, 마네의 정물화, 들라크루아의 대담한 색채 활용에 감탄했고 그 감탄이, 모방이, 영감이 쌓여 고흐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의 그림은 느슨한 붓질, 밝은 색감, 강렬한 감정의 흔들림을 품게 된다.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은 밤하늘이라기엔 파랑과 노랑, 초록이 말도 안 되게 섞여 있다. 밤인데도 환하고, 정적이 아니라 살아 있다. 하늘은 숨 쉬고, 별들은 소용돌이치고, 마을은 잠들어 있지만 색은 깨어 있다. 이건 분명 감각의 눈으로 본 밤이다.


그 감각은 어디서 온 걸까?




빛이 물러난 자리에 생겨나는 것


우린 이미 은근히 느끼며 살고 있지만, 감정은 시간대별로 다르게 깨어난다. 낮에는 이성과 질서의 옷을 입고, 밤에는 벗어놓은 마음들이 부딪친다.


밤은 빛의 시작이다. Nuit Étoilée sur le Rhône Ⓒ Vincent van Gogh, Musée d'Orsay


밤에는 감정이 낮보다 크게 반짝인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더 잘 들려서일까? 심리학적으로도 밤은 감정이 증폭되는 시간대로 분류된다. 코르티솔 분비가 줄면서 스트레스 내성은 낮아지고, 감정 중추인 편도체는 활발해진다. 한마디로 다스리는 능력은 줄고, 감정 자체는 더 또렷하게 튀어나온다. 고흐가 밤에 빛을 찾아 그려낸 이유도 이 감정 과잉의 시간과 닿아 있다. 그의 밤 풍경은 그 안에서 터진 감정의 소용돌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새벽은 감정보다 감각이 앞선다. 멜라토닌은 줄고, 다시 코르티솔이 분비되며 몸이 깨어나는 시간. 그래서일까? 나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건 오후 3시만 되어도 바닥나는 저질체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 더 가까워진달까. 감정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시간 같다.


억제되지도, 휘몰아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남는 시간.


Boulevard De Clichy (1887) Ⓒ Vincent van Gogh, Van Gogh Museum, Amsterdam


고흐의 그림에도 새벽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시간대가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나는 이 그림이 새벽의 색에 가깝다고 느낀다. 색이 일어나기 직전의 풍경. 빛이 물러난 자리 남은 여운 같은 색. 정확히는 어둠이 물러난 자리겠지만, 새벽엔 달과 별빛의 잔상이 남아있다.


예술은 감정을 색으로 바꾸는 일이다. 빛이 있든 없든, 고흐는 매일 그 감정을 붓질로 옮겨냈다. 별이 떠 있는 밤에도, 해가 지는 들판에서도. 고흐는 빛의 화가가 아니라 감정의 화가였다. 그의 색은 그의 마음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고흐는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았을까. 그에게 그림은 어떤 언어였을까. 그리고 왜 밤에 자주 붓을 들었을까?




빛 너머를 붙잡으려 한 사람

그는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빛 속에서든 어둠 속에서든.


고흐는 늘 빛을 좇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노란색, 해바라기, 태양, 생명의 색들.


하지만 그의 편지를 따라가 보면, 그는 밤에도 자주 붓을 들었다. 그는 별이 뜬 하늘을 보며 신의 숨결을 느꼈고, 도시의 불빛을 보며 고독과 단절을 체감했다. 그림은 그런 그에게 해명의 언어였다.


그렇게 고흐는 외로운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그림이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건 사랑 덕분이었다. 동생 테오와 그의 아내, 가족은 고흐의 흔들림 많은 삶을 품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을, 그의 편지를, 그의 꿈을 지켜내 세상에 남겼다. 가족이 지켜낸 고흐의 화폭에는 그가 바라던 마음의 위로,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는 누군가를 위한 온기와 믿음이 깃들어 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
느낀 걸 그리고, 그린 걸 느낄 수 있다면—
그 길이 옳다는 확신이 있어.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
-Vincent van Gogh


실패가 있었어도, 후회가 남더라도.

그는 자신을 향한 믿음으로 붓을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내리는 어떤 선택도 완벽할 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진심이 있다면 후회마저 자신의 색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빛이든 어둠이든—그 흔적을 기억하게 된다.






새벽은 낮과 밤이 맞잡은 손 사이로 흘러드는 얇은 틈이다.


열기를 쏟아낸 밤이 식고,

날 선 빛이 동공을 오므리게 하기 전.


모든 게 조금 더 비어 있고,

조금 더 조용하고,

그래서 어쩌면 가장 방해받지 않는 시간.

그 짧은 공백 속에서 마음엔 숨 쉴 자리가 생겨난다.


그래서 나는 고흐의 새벽을 떠올린다.


빛과 어둠 사이.

감정과 감각 사이.

그가 잠시 쉬었을 조각은 무슨 색이었을지.



Gezicht op de daken van Parijs (1887) Ⓒ Vincent van Gogh, Van Gogh Museum, Amsterdam



내가 새벽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새벽은 전날 하늘에 따라 매일 조금 다른 색이다.


어떤 날은 애매한 듯 흐릿하고,

어떤 날은 손을 델 만큼 선명해도—

그 모두를 좋아하게 된다.


어제랑 다르다고, 오늘의 색이 틀린 건 아니니까.


이 하늘색의 찰나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는 아주 오래간다.


뜨겁지도 눈부시지도 않지만.

그 조용한 온도는 오히려 오래 담을 수 있다.



밤은 마음의 진폭을 남기고 떠나지만, 새벽은 그 흔적을 품고 새로운 무엇도 시작할 수 있다. 많은 일이, 때로는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시작되는 시간. 짧지만 가장 조용한 용기가 깃든 시간인지도 모른다.





새벽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끝이,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이 되겠지만,


그 틈에서 태어나는 건, 시작이나 끝 같은 정해진 이름보다 오래 남는 온도일지도 모른다.



빛을 좇았던 사람일수록

빛이 지나간 곳에 오래 머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흐의 새벽은 정말 무슨 색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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