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다음 직업으로 5성급 호텔의 프론트를 희망했지만, 현실적으로 나의 경력에서 바로 일하는 것은 무리였다.
대신 비슷한 직무로 오페라하우스 근처 레지던스 빌딩의 컨시어지로 일하게 되었고, 이제 벌써 일한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크게 어려운 것도 없고 일 자체가 크게 힘든 것은 없어서 그런지 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사건들이 있었다. 역시 어디에도 쉬운 일은 없다.
일단 일하는 환경은 깔끔하고 좋다. 건물은 작지만 고급 레지던스 건물인 만큼 호텔과 비슷한 인테리어와 좋은 향기 등으로 깨끗하고 럭셔리한 인상을 준다. 4일을 일하고 4일 쉬는 대신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 하루 11시간을 몰아서 일한다.
빨리 구하게 된 만큼 애초에 길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호주에 언제까지 머무를지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일하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봐야지.
컨시어지 일과
평일엔 빌딩 매니저와 함께 일하지만, 대부분 데스크에서 혼자서 일을 한다. 컨시어지이긴 하지만 실제로 직무는 고급 아파트 경비원 혹은 보안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평소 크게 바쁘거나 일이 많거나 하지 않고 대부분의 일들이 자잘한 편이지만, 건물 내 보안에 신경 써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컨시어지로서의 하루 일과를 처음부터 나열하자면,
아침 7시에 도착하면 overnight security 직원과 지난밤에 일어난 특이사항을 전달받고, 그날의 스케줄이나 컨시어지 전용 휴대폰과 이메일을 확인한다. 건물 내 여러 가지 점검과 보수공사를 하거나 이사를 하는 경우, 외부 계약자들이 오면 문을 열어주고, 주차장에 내려가서 주차 자리를 지정하고, 건물 내 사용 가능한 키를 전달한다.
아침 8시쯤 청소부가 오면 또 문을 열어주고 키를 전달해 주고, 그 시간 때쯤 매니저가 출근을 한다. 이후에는 그렇게 프런트에 앉아서 외부인들을 관리하거나 CCTV를 보며 틈틈이 지하의 주차 사항과 특이사항을 살펴야 한다. 입주민들의 문의나 특이사항이 있으면 해결해 주거나 매니저에게 전달한다. 또 아침 시간에 꽤 많은 양의 택배나 우편을 받는데, 입주민들마다 배달에 대한 요구사항이 다르다. 사무실에 보관하거나, 보통은 직접 문 앞까지 배달을 하고 문자 서비스를 한다. 아침 시간에 내 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 정도인 것 같다.
그렇게 점심시간 후 오후엔 부동산 에이전트가 오고 인스펙션을 하는데, 키를 잘 관리하고 기록해두어야 한다. 특히 건물 내에서 키가 있어야만 층수 이동을 할 수 있기에 외부인이 가져갈 경우 잘 관리해야 한다. 이외에도 매일 우버 배달원들의 방문, 개인 청소부나 친인척 외부인들을 들여보내달라거나, 건물의 문제사항 등의 문의사항들이 있다. 대부분 전화로 문의가 오기 때문에 컨시어지 휴대폰을 쥐고 있어야 한다. 그 외 매니저의 요청사항 돕거나 부동산 에이전트나 입주민들의 이메일 문의사항 등을 관리한다. 일하는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나 특이사항을 수기로 또는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오후 4시가 지나가면 매니저는 퇴근하고 오늘의 전달 특이사항을 다음 직원에게 이메일로 전달한다.
보통 조용할 때가 많지만 어쨌든 혼자서 일하기 때문에 일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해서 종종 바쁘다. 아직 적응 기간이라서 실수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일들에 비하면 일 자체의 스트레스 강도가 낮은 편이다. 건물 내에 대처가 어려운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땐 부담스럽긴 하다. 특히 주말에는 매니저가 없는데, 다행히 아직까진 별일 없었지만. 큰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