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살아보길 참 잘했지 모야"

by GOLDRAGON

대부분의 일기는 비밀로 남겨진다.
하지만 나는, 남들도 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관종'까지는 아니지만,
나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작은 마음쯤은 있었나 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역사가 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여 한 세대를 만들고, 또 사라져간다.

그 큰 시대의 흐름 속에
나만의 아주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아주 적은 그 누구에게라도 읽혀서,
그들이 내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느낄 수 있다면.

나도, 당신도 지금까지의 인생을 잘 견뎌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잘 살아내겠노라고.


나는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많은 약을 복용한다.
혈압, 고지혈증, 협심증... 기타 등등.

그중에 '뇌혈관 영양제'라는 것이 있다.
일명 '강남엄마약'이라 불리는 약이다.
뇌혈관에 영양을 공급해 학업에 도움을 준다는 소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약을 복용하는 이유는 다르다.
나의 뇌혈관은 남들과 달라, 원활한 혈액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약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요즘 들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치매 비슷한 단기 기억 상실증'이 생긴 것 같다.
하려던 이야기를 까맣게 잊는다거나,
무언가 하러 가던 도중 그 일을 까먹고 돌아서는 일들이 잦다.

가족과 남들에게 하는 내 '자랑 아닌 자랑' 중 하나가 기억력이다.
남들이 잊어버린 일들을 떠올려주며
그들의 추억을 꺼내주는 일,
그것이 내 유일한 능력이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요즘 들어 서서히 쇠퇴해 간다.
어린 시절의 내 기억들조차
불과 몇 년 만에 희미해져 간다.

힘들 때마다 꺼내보던 내 기억의 창고가,
이제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문득 깨달았다.
모두 사라지기 전에 남기자.
나만의 작은 세상 속 발자취를 글로 써서
모두 잊히기 전에 남기자고.

내가 쓰려는 이야기들은
인생을 다 살아본 득도한 사람의 철학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보통의 현재를 살아내는
한 사람의 현재진행형 이야기다.

또한, 당신들만의 일상과 역사가 궁금하고
보다 나은 인생이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며
교감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글은 5학년(50세)을 목전에 둔
4학년 9반 학생의 공개하고픈 비밀일기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의 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인생이 끝나면서야 비로소 졸업할 수 있다.

당신은 지금,
몇 학년 몇 반에서 반짝이는 당신만의 인생 페이지를 쓰고 있는가?

[응답하라 1988], [폭싹 속았수다]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시대를 함께 살아봤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들도 '애순이'와 '관식이'였고,
우리 역시 어딘가의 '금명이'로 살아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절 빛났던 찰나의 순간들이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이 서글펐다.

그래서 아직 젊다고 말할 수 있을 지금,
아니, 내일보다 젊을 오늘에 남기고 싶었다.
흐려지기 전에, 잊히기 전에,
그 시절의 나를.

그 시절에 묻혀 있는 우리의 흔적들,
어느 기억 저편에서 각자의 '금명이'로 살아왔던 이야기들.

당신들 모두, 인생을 살아내느라
폭싹 속았수다.

그리고,
애순이가 말한다.
"살아보길 참 잘했지 모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