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1학년2반. 햇살속에 남겨둔 기억.
https://suno.com/song/bf804945-bfaa-4c19-9c7c-a8bf077d767d?sh=TVkJyhsMgYp5uWar
작사:GOLDRAGON 곡:SUNO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가슴앓이란 걸 해본 적이 딱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내 모든 유년시절의 우상이자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었던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신해철'형님과 초등학교 5학년때 같은 반 친구였던 '창희' 때문에 그랬었다.
그중 오늘은 '창희'의 이야기이다.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웃던 그녀의 어린 모습을 난 아직 기억합니다."
해철이 형 노래의 가사처럼 그녀는 햇살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무엇이 그렇게도 좋았던 건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창희야~ 창희야~" 여기저기서 그녀를 부른다.
그만큼 인기가 좋았고 모든 남자친구들에게 호감이 있었던 창희는 새침데기였다.
어느 날 조용한 수업시간 중 걸상 끌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창희였다.
난 이때다 싶어 소리쳤다. "선생님~ 창희가 방귀 뀌었데요~"
아이들은 그 말이 웃겼던지 깔깔 웃었고 그녀는 나를 째려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쳤었고 관심을 끌었다는 생각에 난 그것마저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관심표현은 그게 전부였다.
그 시절 12살 초등학생들의 관심표현은 '쪽지'였다. 마치 작은 딱지 접듯이 만들어 "야. 00가 이 쪽지 너주래" 아니면 책상 안에 몰래 넣어두고 가기도 했다. 창희책상 안에는 쪽지가 항상 넘쳐났다.
그 쪽지 중에는 물론 내 것도 있었다.
마치 유명 연예인들에게 보내는 '펜레터'라던가 또는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것처럼 "내가 쓴 걸 과연 창희는 읽을까?" 이런 고민들에 혼자 끙끙 앓기도 했다.
반학기 정도를 혼자 짝사랑만 하다가 난 중대결심을 했다.
역시 그녀를 좋아했던 내 단짝친구 '원호'와 함께 방과 후 그녀의 집 앞으로 쳐들어가기로. 무작정 돌진해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집 앞 벤치에 앉아 애꿎은 돌멩이들만 발로 부비며 땅바닥만 쳐다볼 뿐...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이미 우리를 봤던 건지 밖으로 나와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마냥 기쁜 나머지 쫄래쫄래 따라갔다.
창희는 슈퍼마켓 앞으로 데리고 가 우리에게 '쭈쭈바'를 사주었다. 맛있었다. 그녀와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어색한 침묵만 흐르던 그때, 밝은 웃음을 보이며 "이제 집에 가. 더 늦기 전에." 창희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가 아쉬웠던건지 난 한참을 더 집 앞에 그렇게 덩그러니 앉아있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집으로 향하던 똑같은 길이 그날따라 새로웠고 가는 내내 싱글벙글하며 마냥 좋았다. '쭈쭈바' 사건?이후로 고백 한번 제대로 못해본 나의 짝사랑은 별다른 진전 없이 끝나버렸고 새로운 학년이 되면서 창희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복도나 먼발치에서 스치듯 지나치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의 흐름은 많은 인생의 고민들과 새로운 과제들을 내 앞에 던져주었고 창희와의 기억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 묻히게 되었다.
24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인터넷상에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모임사이트가 생겼던 시기였다. 잊혀졌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찾아 온라인상에 모임을 만들고 직접 만날 수 있던 그 시절 폭발적이고 획기적인 아이템이었다.
다만 지금은 그 모임이 불륜의 장이라는 오명을 쓰면서 퇴색되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연락을 받아 한번 나갔던 기억이 있다.
다들 변해버린 모습에 서로들 놀라고 어른이 돼버린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서로의 오래된 안부와 지나온세월을 이야기하던 중 우연히 창희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던가. "창희 결혼했다더라" "남편이 선교사라던가?" "아마도 결혼하면서 외국에서 산다지?"
다들 잘 알진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흩날리듯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한 뜬소문들이었다.
그렇게 반갑던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일부러 오래전 그녀의 집 앞에서 '쭈쭈바'를 먹고 설렘으로 집에 돌아갔던 그 길을 찾아 걸었다. 오랜시간동안 잊고살았었다.
12살에 처음으로 가슴앓이를 했던내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마음과 같이 많이도 변해버린 거리는 낯설고 어색했다. 밤하늘에 뜬 별들이 얼큰한 취기와 맞물려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나의 첫 짝사랑과 첫 가슴앓이는 그날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모두 잊혀졌다.
그날저녁의 둥근달만이 집으로 향하는 날 쓸쓸히 비추고 있었다.
*우연히 들러 본 동창회에서
숙녀가 된 그 애를 다시 만났고
우린 진짜로 사랑에 빠졌으면 좋았겠지만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얘기지
졸업 후 다시는 그 앨 못 봤어
결국 삶이란 영화가 아니란 얘기야
정말 아주 우연히 어느 하늘 아래 길을 걷다가
스치듯 지나쳐 갔을 수도 있겠지
너는 내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