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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 주세요, 할머니"

25살. 2학년5반. 후회와 그리움 사이, 놓치고만 시간들

by GOLDRAGON

어느 날 책장정리를 하다가 잊고 있던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나만의 사진첩을 만들고 싶어 오롯이 내가 주인공인 사진만을 담아놓은 사진첩이었다. 어릴 적 나는 지금과 다르게 무척 예쁘고 한 귀여움 하는 동네에서 소문 자자한 아이였다.

온 동네사람들이 나를 안아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안아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이뻐했다고 엄마한테 전해 들었다. 벌개 벗고 찍은 사진,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찍은 사진, 큰누나등에 꾀죄죄한 얼굴로 업혀있는 사진 등...

사진첩을 보며 소소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진첩의 마지막페이지즈음이었을까. 어느 백발의 할머니가 서너살 즈음되어 보이는 어린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 주택으로 보이는 대문밖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이었다.

그렇다. 나의 친할머니이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한번 소개했듯이 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잘 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 부럽다] 는 정부차원의 캐치프레이즈 카피문구가 TV에서 공익광고로 나올 만큼 그 시절에는 아들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던? 시절인지라.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우리 할머니도 집안에 아들은 꼭 봐야만 한다는 생각을 품고 계시던 옛날사람이셨다.

이제는 또 다른 할머니가 돼버린 엄마는 아직까지도 할머니는 그 시절 여느 집들의 고부관계처럼 별반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옛날 시어머님상 이셨다고 말씀하신다.

아들인 나를 보기 위해 위로 두 누나를 연속으로 출산하시면서 엄마도 얼마나 애타하시며 속을 끓이셨으랴.

다행히도 셋째로 나를 나으시면서 울 엄마는 다니던 회사인 지금의 KT전신인 전화국에서의 일을 그만두셨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말씀하실 땐 가슴 아파하신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셨던 동기분들은 모두 정년까지 마치시고 임원으로 퇴직하셨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극성스럽고 엄한 시어머님 덕분에 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고 엄마는 경력단절녀이자 전업주부가 되셔서 오롯이 우리 세 자녀들을 지극정성 육아하셨다.

엄마한테는 고된 시집살이 셨겠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옥동자였다.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 막으랴. 나도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할머니는 꼬부라지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성격만큼은 변하지 않고 곧은 강직함을 보이시면서 끊임없이 엄마에게 가족부양과 희생을 강요하셨다.


할머니에게는 장남이자 나에게는 큰아버지이신 분이 계셨지만 일찍 돌아가신 이유로 차남인 아버지께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면서 할머니가 엄마에게 부리시는 고집, 잔소리등이 싫었다.

"왜 할머니는 우리랑 같이 살아서, 난 맨날 할머니한테 방도 뺏기고 내 방하나 없는 신세일까" "할머니는 왜 울 엄마를 맨날 못 잡아먹으셔서 안달이지?" 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조금씩 할머니를 멀리하고 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대면대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얘 용아~ 할머니 따뜻한 물 좀다오~" 내가 라면이나 짜장면을 먹을때면 "얘 용아~ 할머니 한 입만 좀 다오~"

이렇게 나에게 말이라도 걸라치면 아무런 대꾸 없이 나는 곧장 그 길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걸어 잠그고 음악을 크게 틀어버렸다.

그렇게 못되고 버릇없이 행동하는 날들이 몇 해가 되었다. 강직하고 그렇게 정정하던 할머니도 구순이 가까워지는 연세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엄마에게는 어느덧 잔소리나 고집도 없어지시고 나에게는 무엇을 바라시는 것도 없이 말문자체가 막히신듯했다.

누워계시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식사량도 훌쩍 줄어들어 몸도 야위어가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조금씩 세상과의 이별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난 할머니의 목소리가 집에서 들리지 않으니 좋았던 것일까.


그날도 변함없는 하루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늦은 새벽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 그 당시 유행했었던 과산화수소로 머리를 탈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늦은 시간에 고모가 와계셨으며 할머니 옆에 누워계셨다. 별생각 없이 인사드린 후 나는 계속해서 하던 일을 하고 있던 중... 침묵만 가득한 새벽을 가르는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엄마~! 엄마~!" 고모의 외침이었다. 주무시던 아버지, 엄마, 그리고 탈색 중이던 내가 마지막으로 뛰어나갔다. 내 눈에 들어온 할머니의 모습은 그저 늘 주무시던 모습 그대로 평안해 보이셨다.

하지만 그렇게 할머니는 세상과 작별하셨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고모. 모두 심야에의 대성통곡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세분의 통곡장면이 비현실적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뿐...

4층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던 우리 집은 그 집을 지으면서 건강하고 젊은 나조차도 계단이 가파른 관계로 4층을 오르고 내려가기가 버거웠다.

하물며 거동조차 할 수 없게 된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집밖으로 나가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병원에서 출동한 구급대원에 의해 그렇게도 단 한 번의 외출이 소원이셨던 할머니는 단 10분여 만에 집밖으로 들것에 흰천으로 덮힌채 꽁꽁묶여 실려 나가실 수 있었다.

그때 그 시점이었나 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뒤늦은 통곡을 하고 있는 나를 본 것이.

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울고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으악~ 아~아 앙~"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나를 그렇게 예뻐해 주셨던 할머니를 딱 한 번만이라도 업고 밖으로 나가서 따스한 햇살이라도 한번 보여드릴걸..."

어렸을 때부터 다 자란 후에도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셨던 할머니를 내가 딱 한 번만이라도 업어드릴 것을... 따뜻한 물, 짜장면 한 젓가락, 드시라고 내어드릴 것을...

할머니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만 받은 나는 할머니에게 무엇을 해드렸는지. 그저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울었다.

뒤늦은 참회와 후회의 눈물만 흘러내렸다.

그렇게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한참이 지나버린 지금 나는 사진 속에 웃고 계신 할머니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살아생전 보시지 못했던 당신의 증손녀이자 나의 딸에게 나는 틈나는 대로 이야기해 준다.

내가 평생 해보지 못한 "할머니에게 효도해야 한다~"라고.


모든 일들은 그때는 모르고 꼭 시간이 지난 후에야 후회하고 느낀다.
사람이란 동물이 그렇다. 너무도 식상한 말이다.
살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살아있을 때 잘해라" 그런데 그렇게 못하고 또 살아간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며 주변에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나도 당신들도 우리 모두 세상과 작별할 때 그 누군가 우리 때문에 가슴에 못이 박히고 후회스러움이 남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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