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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의 세계?일주, 그 무모했던 청춘의 기록1탄

27살. 2학년7반1학기.

by GOLDRAGON

"야, 우리 그냥 떠날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둘은 각자 잘 다니던 직장을 1년여 다니고 동시에 퇴사한 후 외쳤다.

그 한마디로 시작됐다. 가진 돈은 딱 100만 원. 친구 한 녀석과 함께 계획도, 후원도 없이 무작정 떠난 배낭여행이었다. '한 달, 혹은 그 이상을 버텨보자.'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목적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세상을 보고 와서 사업하자." 나름대로 거창하고 대의 있는 출발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냥 젊음의 객기였지만...

우리 또래 친구들이 취업과 돈벌이에 집중할 때, 우리는 배낭 하나 둘러메고 비행기에 올랐다. 친구들은 부러워했지만, 사실 우리는 놀러 가는 게 아니었다. 뭔가를 보고, 배워 오겠다는 진지한 마음이었달까. 각 나라의 성공한 기업들을 찾아가 그들을 벤치마킹 하여 공부하겠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첫 번째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도쿄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예기치 않은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며 도쿄의 유흥가, 가부키초의 뒷골목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관광책자에 나오는 명소들'보다는, 그 나라의 진짜 일상 속 골목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부키초는 일본의 밤문화가 응축된 곳이었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했지만, 그곳에선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판기도 일본에서 경험한 충격적인 문화 중 하나였다. 일본의 자판기는 음료수, 담배, 컵라면 같은 기본적인 물건만 파는 게 아니다. '속옷'이 자판기에서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진짜 문화 충격을 받았다. 한 나라의 문화가 이렇게나 독특할 수 있구나, 싶었고, 그 자판기를 한참 동안 쳐다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본은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겪을 시행착오의 시작은 롯폰기에서 일어났다. 우리 둘은 여행을 떠나기전 목표했던 회사를 찾기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회사가 위치해있다는 롯폰기란 곳을 향해 찾아갔다. 지도만을 의지한채 찾아간 이곳은 비즈니스가 활성화된 지역이라 그런지몰라도 알수없는 딱딱함이 맴돌았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벤치마킹 대상 건물은 유명한 사업체가 운영하는 빌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점. 사전 예약도 없고, 아무런 검증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건물로 돌진했다. 당연히 건물 앞에서 경비원이 우리를 가로막았고, 결국 '누가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 그것도 행색은 누가 봐도 여행객 같은 사람이 들어오게 놔두겠냐'며 쫓겨나게 되었다. 롯폰기는 우리나라의 강남처럼 부촌 동네로, 교통비조차 다른 도시에 비해 비쌌고, 우리는 그날 하루 종일 헤매며 늦은 저녁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이 경험은 너무나 웃기면서도 어이없었고,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에서 우리는 풍차로 돌진했던 '돈키호테'같던 느낌이었다.

그리고 도쿄에서의 또 다른 기억은 오다이바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오다이바 지역을 둘러보려고 모노레일을 탔다. 오다이바는 도쿄의 현대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로, 로맨틱한 분위기와 미래적인 건축물이 돋보이는 지역이다. 그곳에서 후지 TV 본사도 방문할 수 있었다. 거기서 신기했던 건, 본사 건물 옥상에 있는 미니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사실 미국에 가본적이 없는지라 그때는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터였는데, 그렇게 미국에 가지 않고도 일본에서 자유의 여신상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미국 땅에서만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진을 일본에서 찍을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기뻤고, 그 순간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그런데 미국은 언제쯤 가볼수 있으려나...)

그런데 도쿄에서의 또 다른 충격적 에피소드는 정말 잊을 수 없다. 한 작은 가게에 들어갔을 때 일어난 일인데, 우리는 길을 돌아다니다가 외진 골목에서 정말 오래돼 보이는 가게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들어갔다. 가게 안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 주인장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음식을 주문할 때부터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니, 결국 우리가 자리를 떠나면서 할머니가 문을 열고 우리 뒤를 지켜보셨다. 그리고 그 순간, 일본인 할머니는 우리를 향해 소금을 가득 담은 바가지를 흔들며 우리 뒤에다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는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돌아보니 자국에서 우리에게 혐한 감정을 느꼈던 것은 아닌지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불편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작은 경험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일본 사회의 깊은 곳에 있을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시간이 흘렀다. 무모함도 있었고, 서운함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가 바란 건 경험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한 나라에서 배운 것을 곱씹으며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고민했다. 가진 돈은 빠르게 줄고 있었고, 여전히 우린 '계획 없는 청춘'이었지만, 계획한 대로 직진해야만 했다. 그렇게 고민 끝에 고른 두 번째 행선지는 홍콩이었다. 가까우면서도 전혀 다른 문화, 그리고 비행기 표가 비교적 싸다는 현실적인 이유까지 더해졌다. 일본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홍콩에 도착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휘말리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유명한 야시장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유명한 야경을 보기 위해, 그리고 거리의 음식들을 제대로 경험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예쁜 거리 음식부터 핫한 쇼핑몰까지, 기대감에 찬 마음으로 거리를 걸어 다녔다.

영화'천장지구'의 흔적을 찾아서.

하지만, 홍콩 여행에서의 첫 번째 대박 사건은 일명 <삐끼>라 하는 호객상인들을 만났을 때였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다가오는 친절한 아저씨가 "이쪽에 좋은 가게가 있으니 따라와!"라고 손짓을 하며 유혹했다. 우리는 그냥 웃으며 무시했지만, 그 아저씨는 우리를 무려 몇 블록을 따라오며 계속해서 꼬셔댔다. 그러더니 결국 우리를 명품? 시계 가게로 끌고 갔다. 한눈에봐도 장난감처럼 유독 빛나는 시계들을 보여주며 이게 진짜 명품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하던 그 아저씨의 말을 믿는척하며, 우리는 기어코 구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는 그때도 가진돈이 얼마 없는 상태였기에, 가장 진품 같은 '롤랙스' 시계를 하나 구입했다. 뭐 그 뒤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역시나... '롤렉스'라고 주장했던 시계는 3일 만에 반짝이는 팔찌가 되어버렸다. 정말 혹시나 아주 혹시나 해서 시계를 그곳 현지의 백화점 명품관에 가져갔더니, 명품관의 직원이 우리를 바라보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홍콩의 야경을 구경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우리가 야시장에서 구경하다가 길거리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우리가 너무 배가 고파서 대충 아무거나 주문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정말 '대단한' 음식 요리를 만들어내셨다. 그 비주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계살이 가득 붙은 정체 모를 고기 덩어리를 누가 봐도 대충 불에 구워서 나온 조미료 잔뜩 뿌린 음식이었는데,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고 가격대비 괜찮은 로컬푸드인 듯싶어 아무런 예상 없이 그걸 바로 먹어버렸다. 외국이지 않은가. '무엇이든지 신기하고 맛있겠지' 하며...

결과는 하... 얼마 안 있어 결국 우리 둘 모두 화장실로 직행하게 되었다. 내가 홍콩 화장실에서 그런 처참한 상황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명물 야경을 보기 위해 나갔다가, 어처구니없고 조금은 위험했던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정말 음식으로 여지껏 그랬던 적도 없었고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은 나중에야 우리가 웃으며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는 내용이 되었다.

다음날 늦은오후에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홍콩의 특별한 풍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배우 '장국영'이 마지막까지 묵었던 호텔

"야 여기 홍콩이쟎아. 홍콩배우들도 돌아다니지 않을까?" 우린 <영웅본색>에 열광했던 일명 <누아르세대> 아니던가. 홍콩배우 '성룡'이나 '주윤발'을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고 어리석은 상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생각에 푹 빠진 우리는 늦은 새벽까지 홍콩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별다른 목표는 없었다. 그냥 '성룡'과 '주윤발'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우리는 그 동네를 계속 돌아다녔다.

결국 그때 만난 건 '성룡'도 아니고 '주윤발'도 아니었고, 그저 일상의 거리에서 바쁜걸음으로 묵묵히 살고있는 현지인들 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는 끝없이 돌아다니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우리의 행동에 계속 웃으며 떠들었던 기억만이 남았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그 작은 꿈 하나에 미쳐 있었다. 결국, 홍콩에서의 하루는 우리에게 나름의 인생의 교훈을 주었다. 명품 시계와 짜릿한 화장실 경험, 그리고 끝없는 도전으로 남은 여행의 중요한 추억이 되었다. 홍콩을 떠날 때 즈음에는 일본에서의 여행처럼 진지하게 '사업'을 위해 온것이 아닌, 조금씩 그냥 우리가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때의 우리는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돈 없는 여행을 할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지만, 어쨌든 그 평범치 않았던 경험들이 지금까지 추억할수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짐을 꾸렸다. 돈도, 계획도 여전히 부족했지만, 그건 우리를 막지 못했다. 아시아에서의 좌충우돌을 뒤로하고, 이번엔 더 멀리 — 유럽으로 향하기로 했다. 새로운 언어, 낯선 문화,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다음 목적지는, 영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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