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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버지?&서러웠고, 결혼했고... 난 행복해!?

32살. 3학년 2반. 서툰 마음들이 지나간 자리.

by GOLDRAGON

https://suno.com/s/aJLalMVyIeooOmna

작사:GOLDRAGON 곡:SUNO


"너 그렇게 계속 살 거면 이 집에서 나가!"

"네! 나갑니다! 나간다고요!"


우리 아버지와 나는 살갑고 다정한 부자지간은 아니다.

"네 아빠가 얼마나 아들 걱정하는지 알기나 해?"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뭐, 나는 안 그러냐고."

서로 마음은 있는데 표현엔 서툰 사이.
우리는 그렇게 긴 시간을 한 집에서 '가깝고도 먼 거리'로 지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릴 적엔 아빠와 목욕탕 가는 게 그렇게 기다려졌다.

목욕 후 음료수 한 병을 혼자 다 마실 수 있던 유일한 시간.

주말이면 아빠랑 동네 중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축구를 했다.

그땐 분명 "아빠~"라고 부르며 따뜻하고 든든한 존재로 느껴졌던 분이다.

6살의나. 젊은시절의 어머니.아버지

그런 '아빠'가,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어느 날 문득 말씀하셨다.

"이제 ‘아버지’라고 불러라."

그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낯선 호칭은 대화의 단절로 이어졌다.
부르지 않으니 말이 줄고, 말이 줄다 보니 어느샌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어릴 적엔 엄마처럼 아빠에게도 조잘대며 이것저것 다 얘기했지만,
이제는 정말 필요한 말 아니면 입을 열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32살.
요즘 같으면 결혼 안 해도 그만인 나이다.

혼자 잘 사는 게 대세고, 부모들도 이제는 굳이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시대가 달라도 아버지의 기준은 달라지지 않았다.

누나들은 일찍 결혼했고, 그 뒤로 7년 동안 나 혼자 본가에 남아 있었다.

나는 백수도 아니었고, 성격에 문제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타이밍이 안 왔을 뿐이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내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아버지 눈엔 '장가도 못 가는 등신'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잔소리는 점차 작전으로 변해갔다.

명절이면 가족들 앞에서 단연 화제는 '내 혼사'

나에게 안 통하니 이제는 누나들과 심지어 매형들에게도 화살이 날아갔다.

"니들은 네 동생 저렇게 둘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집 밖 골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비틀비틀 집에 들어오시는 걸 부축해 소파에 앉히는 그 순간, 알게 됐다.

평소의 잔소리는 그나마 '젠틀한 버전'이었다는 걸.

그날은 달랐다.
고성, 욕설, 비난이 마치 작심이라도 하신 듯 정신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결정타.

"너 그렇게 살 거면 이 집에서 나가라."

그 말에 나도 참았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네. 나갑니다. 나간다고요!!"

그 길로 방문을 세게 닫고, 여행용 가방을 꺼내 닥치는 대로 옷을 쑤셔 넣었다.

분노와 함께, 눈물이 터졌다.

배신감이었을까, 서러움이었을까.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그저 눈물이 나왔다.

그때, 엄마가 조용히 방에 들어오셨다.

"너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라."
"강요는 잘못이지만, 아빠도 본인만의 기준이 있는 거니까."

조금 진정되고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

분명 당당히 '이 집에서 나간다!'라고 고함쳤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 잠깐. 나 집 나가서 갈 데는 있나?

'쳇. 내가 어디 갈 데 없을까 봐.'

... 없었다.

아마 새벽엔 몰래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불속에 누워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것, [가정을 꾸리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이럴 바엔... 내 집, 내 가족을 꾸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날따라 엄마, 아빠가 유독 낯설게 느껴졌다.

타인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짝을 찾기 시작했다.

누가 알았을까. 내 평생의 인연이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을 줄은.

지금 돌아보면 결론적으로, 결혼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서로 상처도 주고받았고, 물론 지금도 잦은 다툼과 화해의 연속이며, 또한 과정 역시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축복 속에 시작된 인연은 결혼 16년 차가 된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그날 아버지의 그 말이, 그 잔소리와 꾸중들이

어쩌면 내 인생의 기폭제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감사라도 드려야 하는 걸까.


결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
'하고 후회하자'.
해보지도 않고 남는 후회는
더 오래 남고, 더 허망하다.
최소한 돌아올 '추억'이라도 생기지 않겠나.
그나저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아버지' 대신
다시 '아빠'라고 부르면
예전처럼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 이름 하나에
그 시절 우리가 담겨 있다면...
당신에게는 지금,
그분이 '아버지'인가요?
'아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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