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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원의 세계?일주, 그 무모했던 청춘의 기록2탄

27살. 2학년7반2학기.

by GOLDRAGON

27살. 100만 원의 세계?일주, 그 무모했던 청춘의 기록

홍콩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우리는 또 다른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영국에 도착한 날, 그곳에서의 첫 번째 순간은 정말 영화처럼 시작됐다.

히드로 공항의 입국 심사대에서부터 우리의 여행은 예사롭지 않았다. 입국심사관이 마치 헐리우드 배우인 덴젤 워싱턴처럼 생겼었고 날카로운 눈매로 우리를 훑어보며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돈은 얼마냐, 어디서 묵느냐, 왜 왔느냐." 긴장감이 흐르는 그 순간, 우리는 결국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하고 몇 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 같았다. 몇시간이나 흘렀을까... 겨우 입국을 허가받고 나니 마음이 풀리며 정말 여행을 시작했다는 실감이 났다.


입국 후, 우리는 2층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요금카드 단말기가 고장이 나 있었던 것이다. 운전사 아저씨가 "Get in there!" 라고 소리쳤지만, 우리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영국식 발음에 전혀 적응? 되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아저씨의 짜증을 사며, 간신히 그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 아무리 외국에 왔어도, 이렇게나 기본적인 것에서 난처한 상황을 겪을 줄은 몰랐다.

식사는 항상 '완케이'라는 저렴한 중국식당에서 해결했다. 그곳은 가성비가 정말 좋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정말 인상 깊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영국인들은 박지성 이야기를 시작하며 우리의 한국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했다. 박지성은 그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맞고 있었고, 우리가 그들 앞에서 "박지성!"만 외쳐도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Oh! Park Ji-sung, he's amazing!" 그들은 박지성의 플레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존경을 표했다. 그 순간, 나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외국에서 한국을 알아주고, 그들이 자랑스럽게 한국인에게 말을 걸어주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클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호화 관광이아닌 실생활의 서민체험 이었기에 어느 외진 골목의 허름한 클럽을 방문했고 그날 어느순간이 되자 클럽에서 모든 사람들이 상의를 벗고 술병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동양인 두 명뿐이었고,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마치 동물원 원숭이처럼,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 눈을 맞추며 대화도 없이 탈출을 결심했다. 그 뒤, 밖으로 나가자마자 새벽이었고, 대중교통은 끊겨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던 우리는 결국 지하철역 벤치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진짜 노숙자에게 돈을 갈취당하기까지 했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그렇게 길을 잃고 노숙을 하며, 우리 둘은 진짜 여행자가 되어버린 기분을 만끽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런던에서의 고생이 끝난 뒤엔 친구 지인의 신혼집에서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어려울 민폐숙박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3주를 묵으며, 우리는 민폐를 무릅쓰고 지내야 했다. 그동안 우리는 밥을 뷔페에서 몰래 싸온 음식을 통해 연명했다. 우리는 <뭔가를 보고 배우겠다>는 목표로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남을까?'가 주요 목표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런던의 컨벤타운 거리에서 우연히 우리는 삼성 로고를 발견했다. 거대한 건물 외벽에 삼성 간판이 빛나고 있었고,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외국에서 이렇게 큰 한국 기업의 로고를 마주한 건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애국심이 벅차오르며, 자연스럽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 작은 로고 하나가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들었고, 이곳에선 우리가 평범한 배낭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런던 대영박물관 앞에서.

그리고, 런던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런던 브릿지 이야기다. 우리는 그 유명한 런던 브릿지를 건너기로 결심했다. 다가가기 전에 여러 번의 사진을 찍고, 거대한 다리를 오르내리며 그 자체를 만끽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의 풍경이 너무나도 인상 깊어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우리는 이 특별한 장소에서 영국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뿌듯해했다. 런던의 아이코닉한 상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발을 디뎌보는 경험은 그 자체로 값진 것이었다.

우리는 영국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들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해가며 여행을 계속해나갔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웃음을 찾아내고,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깊은 배움을 얻었다.

영국을 뒤로한 채, 우리는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아는 사람이 있다더라>는 이유로 스코틀랜드를 향하게 되었다. 함께 여행을 하는 친구의 사촌형이 그곳의 대학 기숙사에 살고있었다. 우리는 물어볼 틈도 없이 연락을 넣었다. "형, 우리 며칠만... 아니, 몇 주만 묵어도 될까?"


그렇게 시작된 스코틀랜드 기숙사 라이프. 물론 그 방은 한 명을 위한 공간이었고, 그 '한 명'은 바로 그 사촌형이었다. 우리는? 그냥 공간의 여백. 형은 침대에서 자고, 우리는 바닥에 홑이불 하나씩 깔고 누웠다. 밤이면 바닥의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아침이면 입이 돌아가기 직전의 컨디션으로 일어났다. 특히 한 친구는 자고 일어나면 입 옆이 굳어 말이 어눌해졌는데, 그걸 두고 우리는 "오늘도 싱싱함 충전 완료!"라며 깔깔댔다.

하지만 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몇 날 며칠 지나면서 바닥도 나름 포근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여전히 밥. 뷔페에서 몰래 싸온 음식으로 연명하던 생활은 이곳에서도 계속됐고, 기숙사 냉장고는 점점 정체불명의 통조림과 치즈 샌드위치로 가득 찼다.

기숙사에서 바라본 전경

그러던 중, 사촌형이 캠퍼스 수영장 '프리패스'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 이거 빌리면 우리도 들어갈 수 있는 거야?"라는 대책 없는 생각에, 우리는 그 프리패스를 번갈아가며 이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명찰에는 분명 형 이름이 박혀 있었지만, 우리는 태연하게 리셉션을 지나쳐 들어갔다. "Hey, enjoy your swim!"이라는 인사에, "You too!"라는 엉뚱한 답을 날리며 입장했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수영장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우리는 그 속에서 바다표범처럼 뛰놀았다. 현지 학생들은 수영도 조용히, 샤워도 조용히, 물 한 방울 튀기지 않으며 움직이는 신기한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거의 유아 물놀이존처럼 튀고 뛰고 잠수하고 아아악~! 소리까지 냈다. 그렇게 몇 번 드나들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쟤네 또 왔어." "쟤 프리패스 이름이 브라이언 아니었어?" "근데 쟤 분명 동양인이었는데, 오늘은 세 명이야..."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끝까지 수영장을 활보하고 나오는 데 성공했지만, 샤워실에서 만난 한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Are you Brian?"
나는 눈도 안 깜빡이고 대답했다.
"No, I’m… his cousin."
그 정체불명의 브라이언의 사촌은 몇 명인지, 국적은 몇 개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날 나는 스코틀랜드 수영장 역사상 가장 수상한 사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 지내며 스코틀랜드의 맑은 공기와 말도 안 되는 기숙사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유럽에서 자동차 하면 독일이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고, 그날 밤 우리는 슈투트가르트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벤츠 박물관, 포르쉐 본사, 그리고 독일 소시지까지!> 가보지도 않았지만 이미 그 도시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진짜로 그 기계 냄새 나는 도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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