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0만 원의 세계?일주, 그 무모했던 청춘의 기록3탄

27살. 2학년7반종업식.

by GOLDRAGON

독일 슈투트가르트. 이름부터 뭔가 무척 단단하고, 기계 냄새가 나는 도시였다.

사실 그 냄새는 벤츠 박물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이라니, 자동차 좀 안다 하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꿇고 기도라도 올릴 법한 그 성지에 도착한 나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벤츠박물관 앞에서.무단 탑승현장

아무생각 없이 전시 차량 위에 올라탔다. 아니, 올라탔다기보다는 거의 <탑승> 수준이었다. 조수석 문이 열려 있는 게 화근이었다. '이건 타보란 뜻 아닌가요?'라는 황당한 논리로 조심스레 들어가 앉았고, 그 순간 관리원 아저씨가 어디선가 번개같이 등장했다. 독일어는 몰라도 "나와!"는 정확히 알아들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뛰쳐나오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보다도 '사진은 찍혔을까?'가 먼저 떠올랐던 나는, 일찌감치 진정한 SNS 세대의 산 증인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계획대로 다른나라에서 처럼 역시나 독일 서민들의 밤거리를 체험하겠다는 일념하에 나갔다가 또 다른 사고를 쳤다. 가벼운 접촉으로 시비가 붙은 상대는 독일인 취객. 낮술을 거나하게 드신듯한 독일 아저씨. 그날 나는 알았다. 유럽 맥주는 맛도 독하지만 특히나 게르만족의 혈통은 성격도 독하다는 것을. 다행히 큰 충돌 없이 피신(?)에 성공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겁 없음은 거의 무모함이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100미터 밖에서 유턴했을 일이다.

독일에선 국민차인 흔한 벤츠.사건발생 대략 10분전 컷

하지만 진정한 문화 충격은 다음 날 저녁에 찾아왔다. '독일 소시지는 원조니까 당연히 맛있겠지!'라는 순진한 기대와 함께 주문한 소시지는... 음, 뭔가 이상했다. 접시 위에는 물에 젖은 회색빛 소시지 두 줄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딱 봐도 '파충류 계열'.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이건 삶은 거지, 익힌 게 아니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촉촉하다 못해 눅눅했다. 내 혀는 완전히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역시 소시지는 우리집 앞 분식집 튀김 소시지가 최고야' 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맥주. 기대에 부풀어 주문한 독일 생맥주는... 웬걸, 우리 동네 편의점 캔맥주보다 못한듯 싶었다. 뭔가 너무 깔끔하고 너무 정직해서, 나의 초딩 입맛엔 너무 성실했다. 속으로 '이게 맥주냐, 생수냐' 싶었다.(기억에는 탄산이 무척 약했던 기억이) '역시 한국 맥주, 진리' 라는 애국심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속이 뻥 뚫리는 경험이 있었으니, 바로 아우토반. 현지 아는 지인이(독일인) 운전대를 잡고 "진짜 독일 드라이브 보여줄게" 하며 출발했는데, 몇 분 만에 창밖 풍경이 이동이 아니라 순간이동하는 수준으로 지나갔다. 속도계는 200을 넘겼었고, 나는 옆자리에서 안전벨트를 쥔 손에 식은땀이 고였다. 심지어 옆 차들은 우리를 추월해 가는 장면을 보며 넘어오는 구토를 느꼈으며 나 자신은 이미 속도의 한계를 찍었고, 이 사람들은 현실판 '그란투리스모'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독일에서 운전은 특별한 스포츠가 아니라 전통이자 일상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 겁이 없었다. 무모하다 못해 거의 만용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유쾌한 자폭기행이 있었기에,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어딘가에서 나처럼 또 무모하게 전시 차량에 오르려는 여행자가 있다면, 속으로나마 속삭이고 싶다.

'내가 다 해봤어. 근데... 너도 해봐. 인생 한 번이잖아?'


그렇게 우리는 일본에서 시작해, 유럽까지 이어진 여정을 한 달 이상 버텼다. 목표는 사업을 위해 견문을 넓히는 것,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해프닝과 위기를 겪으며 결국 생존을 위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일본의 거리에서 소금 맞고, 홍콩의 야시장에서는 '명품' 롤렉스 시계를 강매당했었다. 또한 현지 쉐프?의 로컬푸드를 먹고 화장실로 직행했으며, 런던의 지하철역 벤치에서 노숙을 하던 순간들. 그 모든 일들이 처음엔 웃픈 경험으로 다가왔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시절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값진 시간이었음을 느낀다.


젊다는 건, 그런 날들을 온전히 경험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그때 우리는 무엇을 찾기보다는, '그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힘썼고, 그 덕분에 나중에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내가 그런 날들을 겪을 수 있었던 건, 그 당시의 '나' 이기에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이라면 아마 그렇게 대담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때 그 시절의 용기와 모험심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때 얻은 것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다. 사업적인 견문보다는 더 많은 웃음과 깨달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구촌 모든 사람들은 같은 시간속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그 자체에 대한 소중함을 배운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은 어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오직 그 시기에만 가능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그때처럼 떠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 100만 원으로 시작한 여행이 내게 남긴 가장 큰 가치는, 단지 생존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추억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그 모든 순간이, 그 당시에는 고생이라 느꼈지만, 지금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젊음을 거쳐오며 지금의 나를 살아내고 있다. 삶이 무료하거나 지칠때면 가끔씩 그때를 회상하며.


"고민 중이야?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했던 것처럼,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