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류하온

2. 망각의 샘 앞에 서서

by 류하온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시나브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망각의 샘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망각의 샘 안으로 빠지기 직전이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누군가 내 등을 밀었다. 풍덩, 하고 빠졌어야 했는데 빠지지 않았다. 코끝이 닿을 듯 말듯한 거리에서 멈췄다. 누군가 내 몸을 잡아주었던 것이다.


나를 구해준 것은 사람인지, 그림자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볼 새도 없이 사라졌다.

두려움이 앞서 밀려왔다. 내가 이대로 망각의 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눈앞이 아찔해졌다. 처음엔 단어를 잊어버리게 되겠지. 그리고 문장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다음엔 한 페이지를, 그 끝에는 내 인생이 담긴 소설을.


다행이었다. 아직은 이 망각의 샘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경고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지금 아주 위험했다고. 망각의 샘에 빠졌을 뻔했다고. 그러니 조심하라고. 새빨간 펜으로 몇 번이나 동그라미 치며 강조하듯이.


자각하게 되자, 나는 망각의 샘을 등지고 도망쳤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도망쳤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헉헉 거리며 도망친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망각의 샘이 멀지 않았다. 내가 뒤로 넘어진다면 망각의 샘에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잊어버린 것이 있는 걸까? 다시 과거를 돌이키게 되었다. 불행히도,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잃어버린 단어가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없어진 것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한 나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주문처럼 괜찮다는 말만 되뇌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불행'이었다면 다행일 텐데. 그것을 오히려 망각의 샘에 던져버리고 싶은 단어였거든.

하지만 만약 내가 잃어버린 것이 '행복'이라면, 난 정말로 슬플 것만 같아. 사실은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지 몰라서 그냥 무뎌지고 있어. 아쉬운 것조차 없게 돼버렸거든.


내 인생의 소설의 한 페이지가 찢겨 나간 것도 눈치채지 못한 백치가 되어버렸다.

괜찮아, 찢긴 페이지가 없어도 결말은 아름다울 수 있어. 아직 결말은 백지니까.

결말은 그래, 아름다운 단어들로, 아름다운 문장들로만 채워나가자. 망각의 샘을 등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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