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여름밤의 정적을 깨는 작은 존재. 귀에 맴도는 날갯짓 소리. “엥엥”하는 그 얇디얇은 날개의 집요한 진동소리.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 바람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던 내가 단번에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그렇다. 모기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모기의 전략은 단순하다. 어딘가에 은폐 엄폐하고 있다가 기습적으로 귓가에 나타내 누구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소음으로 나를 공격한다. 반사적으로 박수를 치거나, 부채질을 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1차 전투는 잠시 휴전 상태로 숨을 고른다. 안도감은 사라지고, 정확히 5분 이내에 또다시 나타난다. 마치 “나 기다렸지?”라고 외치는 것처럼 정확히 동일한 소음으로 2차 공격을 진행한다. 이쯤 되면 이 친구는 단순한 곤충이 아닌, 집요한 스토커다.
사실, 모기를 향한 나의 전투 모드는 단순히 ‘피를 빠는 행위’ 때문 만은 아니다. 모기에게 몇 방 물려봤자 손톱으로 긋는 십자가의 회복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진짜 문제는 귀신같은 타이밍의 소음이다. 보이지도 않는 것이, 잠들기 직전, 귓가에 들리는 “엥~” 소리 한 방이면 깊은 탄식과 함께 찾아왔던 하품은 사라지고, 전투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사람들이 앓고 있는 불면증의 원인도 상당수는 모기에게 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 혼자면 괜찮다. 물려도 상관없지만, 두 아이에게 그 모기가 간다면 참을 수 없는 고난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아빠! 모기 물렸어요!” “버물리 버물리!” 나의 둘도 없는 자녀들이지만, 호들갑 떠는 모습과, 격노하는 모습을 보자면 누구를 닮은 것인가 하는 깊은 고뇌에 빠지기도 한다.
가만히 보자면 모기는 어쩌면 인류 최고의 집중력 코치이지 않을까 싶다. 평소 책 읽을 때, 글 쓸 때 집중이 안 되다가도, 모기 한 마리의 “엥” 소리의 음표 하나의 등장은 어떻게든 그놈을 잡아내기 위한 나의 시야와 청각, 손끝의 움직임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손바닥을 들어 올려 올림픽에 출전한 사격 선수 마냥 호흡은 멈춘 채 동채 시력의 눈동자는 어느 운동선수 부럽지 않는 모든 감각들이 총동원된다. 물아 일체. 몰입의 순간이다.
생각해 보면, 모기와의 사투는 인생과도 닮아있다. 피할 수 없고, 완벽히 이길 수도 없는 상대. 때로는 잠깐 사라졌다가도 금세 돌아와 괴롭히는 존재. 주변에 그런 지인 한두 분쯤은 계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순하다. 부채질을 하든, 모기향을 피우든, 아니면 그냥 받아들이든. 이 작은 적과의 동침으로 무더운 여름을 함께 견뎌내는 것이다.
결국, 모기는 여름날의 풍경이자,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시험감독관 같은 존재다. 다행히 우리 집은 아파트 20층이라 모기가 침투하기 어려운 높이이긴 하지만, 언젠가 침투해 온 모기와 함께 이 뜨거운 여름밤의 적과의 동침을 위해 손바닥을 치켜들 것이다. 그것이 여름밤의 의식이자, 사람과 모기가 맺은 오래된 악연의 한 장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