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 또는 그때의 어스름한 빛
황혼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았다. 다시 한번 나의 부족한 지식을 감추고 싶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지금까지 좋은 의미인 줄로만 알았다. 찾아본 의미는 마치 땅거미의 분위기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끝자락, 창문 밖 황혼이 번진다. 주황빛과 보랏빛이 뒤섞여 세상을 감싸는 그 시간은, 나에겐 아이들이 잠들기 전 마지막 난투극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양치하고 와! 이제 잘 시간이야!”
”아직 안 졸린데요?”
“물 마시고 싶어요!”
황혼이 주는 서정적 아름다움은 우리 집 거실에서는 ‘전쟁의 전주곡’이 돼버린다.
육아의 황혼은 저녁노을처럼 짧지만 치열하다. 한쪽에선 첫째가 “숙제 안 했다고 내일 혼나면 어쩌냐”며 투정 부리고, 다른 쪽에선 둘째가 “피카추 잠옷 입고 자겠다”며 드러눕는다. 한여름의 한 겨울의 잠 옷이라니. 나는 무장 해제된 장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칼과 방패를 든 채 아이들에게 명령한다. 가끔은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건지, 아이들이 나를 단련시키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잠든 후 찾아오는 정적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아이들이야말로 내 황혼을 빛나게 하는 석양빛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과 씨름하며 쌓인 피곤은, 언젠가 내가 아이들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했음을 증명하게 해 줄 흔적일 것이다. 황혼이 하루의 끝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는 통로이듯, 육아의 고단함도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황혼을 반긴다. 아이들과 함께 맞이한 하루의 전쟁 같은 풍경이, 언젠가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물들 거라는 걸 알기에.
아이들이 자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황혼, 그 자체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