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초등학교로 졸업했다. 당시 학교는 교실보다 학생 수가 더 많아 오전 오후 반으로 나누어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의 그 사실을 MZ 세대 친구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풍경일 것이다.
집 안방안에 있던 브라운관 TV는 리모컨도 없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TV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오른쪽이든, 왼쪽으로 돌린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휴먼 리모컨을 사용하신다. 덕분에 나는 엉덩이가 가벼운 남자가 어릴 때부터 되어버렸다.
아날로그의 일상에서의 의미를 찾아보니, 단순한 기술방식의 의미가 아닌 느림, 여유, 손맛, 감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다. 돌이켜보면 아날로그는 단순한 기술 방식이 아니었다. 불편함 속의 따뜻함, 느림 속의 여유, 그리고 손맛과 감성이었다. 손 글씨로 남긴 편지, 현상해야만 볼 수 있던 사진, 잡음을 품은 테이프의 음악.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진솔했고, 기다려야 하기에 더 값졌다. 아날로그는 우리 세대의 감정을 묶어주는 또 다른 언어였다.
그러나 지금의 디지털 시대도 언젠가는 “아날로그”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는 동작, 음성 인식을 통해 기기를 제어하는 모습조차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느리고 불편한 방식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인터넷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술의 파도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날로그란 단순히 과거의 낡은 방식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의 성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브라운관을 돌리며 배운 순발력, 오후 반 수업에서 익힌 기다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느낀 따뜻한 온기.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든 성장의 조각들이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오든, 그때의 우리 역시 오늘의 순간을 “아날로그”라 부르며 미소 지을 것이다. 아날로그는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길 위에 남겨놓은 성장의 증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