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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의 노래

세탁기

by FreedWriter

아이 둘을 키우며 살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집안의 가전제품들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처럼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는 세탁기다.


장교로 입대하기 전, 사관학교 생도 시절에도 세탁기는 우리에게 ‘자유’를 상징했다. 군사 훈련이 끝나면 땀에 전 전투복을 들고 동기들과의 눈치싸움을 이겨내고 세탁실로 바로 향했다. 세탁기를 맡기 위해 뛰어다녔던 웃픈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고, 웃음이 나온다. 전투복을 세탁해야만, 나만의 자유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의 고단함을 헹궈주고, 다음 날을 버틸 수 있게 해주던 조용한 동료였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세탁기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와 어린이집 7세 아. 하루가 멀다 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은 흙 묻고 땀에 젖은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다. 빨래 바구니가 점점 차오르면, 예전처럼 세탁기를 맡아서 뛰어다닐 필요는 없지만 여전히 그 소중함은 절실하다.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 손 빨래를 하던 시절은 과연 어땠을까. 지금에 와서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절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다 겪으셨던 상황이었으니 존경스러운 마음뿐이다.


통돌이 세탁기에서 시작해, 이제는 드럼 세탁기까지. 마치 사람처럼 진화하고 성장한 세탁기의 모습이 내 삶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통돌이가 힘과 단순함의 상징이었다면, AI가 반영된 드럼세탁기는 섬세함과 효율의 아이콘이다. 아이들이 자라듯, 나 역시 세탁기의 변화와 함께 성장을 배운다.


세탁기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더러움은 잠시 일뿐, 함께 돌고 헹궈내면 언제든 새로워질 수 있어!”


삶도 그렇다. 땀과 눈물, 때때로 묻어나는 실패와 실수들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를지라도, 결국엔 씻겨 나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세탁기 앞에 서서 돌아가는 원형의 드럼을 바라보자니, 인생도 결국 돌고 도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깨끗해지고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세탁기의 덜컹거림 속에서 위로를 듣는다.


그 소리는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라 성장과 버팀의 노래다.


‘세탁 후의 건조를 위한 숙연함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단계이지 않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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