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비타민

비타민이 바꿔놓은 20세기의 풍경들

by 로리킴

"왜 비타민이라고 부르지?"


비타민(vitamin)의 어원은 Vital + amine, 즉 ‘생명에 필수적인 아민’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비타민이 아민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기에, 현재는 'e'를 떼어내고 ‘vitamin’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우리는 ‘비타민 X는 결핍 시 XX병 발생, XX 음식에 풍부’ 같은 문장을 외우느라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체계적이라고 느껴지긴 어려웠을 겁니다. 사실 비타민들은, 전부 모아놓고 보면 명확한 분류 체계가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것 같은 독특한 무리입니다.

게다가 하나의 비타민이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가진 경우도 흔하죠.

예를 들어, 비타민 B1은 ‘티아민(thiamine)’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또, 소분류가 되어있는 경우는 비타민 B 군에서 특히 흔한데, 하나의 계열 아래 다양한 형태와 작용을 가진 물질들이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비타민이 이렇게 복잡한 이름과 체계를 가지게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너무 많은 종류가 한꺼번에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1900년대 초, 과학자들은 영양소가 질병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 시초는 지용성 A와 수용성 B1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지용성은 ‘fat-soluble A’, 수용성은 ‘water-soluble B’로 단순하게 나눴지만, 곧 수용성 B 안에 여러 다른 물질이 섞여 있다는 것이 밝혀졌죠. 그 결과, B군에는 번호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B1부터 차례로 붙여나가다가, B4, B8, B10, B11은 이후 잘못된 식별로 제외되었고, 오늘날의 B군은 총 8종(B1, B2, B3, B5, B6, B7, B9, B12)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비슷한 음식류인 통곡물, 동물의 간과 같은 육류에 존재했기 때문에 같은 물질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거죠.


비타민은 그 이름처럼 생명에 꼭 필요한(vital) 물질입니다. 결핍될 경우, 다양한 질병이 생기게 되죠.

오늘은 그 많은 비타민 중에서도 B1, B3, A, D, 이렇게 네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Vitamin B1과 카레라이스


"수수께끼의 병"


비타민 B1이 부족하면 베리베리병(Beri Beri disease)이 생깁니다. 손발이 저리고, 근육이 약해지는 건성 베리베리, 심장 기능 이상, 부종 등이 생기는 습성 베리베리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종류를 나누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두 증상이 혼재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무서운 질병에 귀여운 이름이 붙은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Beri’는 스리랑카어로 ‘매우 힘이 없다’는 뜻인데, 현지인들이 병든 상태를 묘사할 때 ‘힘들어, 힘들어’라고 하다가 그대로 질병의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름은 '각기병'으로, 이 말은 다리(각)에 기운(기)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병의 역사는 제법 깊은데, 곡물이 주식이던 17~18세기 동남아시아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세기, 필리핀의 각기병 환자 (Copyright en.wikipedia.org)

하지만 이 병이 집단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아시아입니다. 이 시기, 도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흰쌀밥이 일반화되었고, 감옥, 학교, 군대 등 집단생활의 구조도 함께 퍼지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1880년대, 일본은 제국주의 노선을 본격화하면서 대만과 만주 등 식민지로의 장거리 항해가 잦아졌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항해를 위해, 일본 해군은 탄탄한 해상 전력을 갖췄지만,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원 약 1/3이 베리베리병에 걸린 것입니다.


다리의 힘이 빠지고, 무릎이 풀리고, 경련이 반복되다 결국 몇 달 안에 사망하는 사례도 잦았습니다. 당시 해군은 이를 전염병으로 의심해 격리하고 소독했지만, 어떠한 방역 조치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흰쌀밥, 병을 부른 호사"


이 수수께끼에 주목한 인물이 해군 의무관 다카키 가네히로(Takaki Kanehiro, 1849-1920)입니다. 1875년, 영국 유학을 마치고 1880년 일본 해군에 복귀한 그는 “왜 일본 해군에는 베리베리가 있고, 영국 해군에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습니다. 특히 주목한 것은 증상이 장교에게는 거의 없다는 점이었죠. 장교와 선원의 유일한 차이는 바로 식단이었습니다.

다카키는 1883년, 직접 실험에 나서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한 그룹은 기존대로 흰쌀밥 위주의 식사를 제공했고, 다른 그룹에는 보리밥, 고기, 채소 등을 추가한 식단을 줬습니다.


그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보리·고기·채소를 먹은 쪽에서는 베리베리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경험적 결과를 바탕으로, 그는 일본 해군의 식단을 개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 이후, 해군 내 베리베리 발생률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해군의 전반적 명성도 크게 올라가게 됩니다.


지금 당시의 상황을 다시 풀어보면, 비타민 B1은 육류와 쌀눈에 풍부한 성분입니다. 해군이 인기 직업이던 영국에서는 선원들의 식단 자체에 문제가 없었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대부분 가난한 자원병들이 배를 탔습니다. 물론 식사는 군에서 제공했지만, 일본군은 받은 반찬을 가족에게 보내고, 본인들은 흰쌀과 미소(된장국)만 먹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케를 만드느라 도정 기술이 발달한 일본은 좋은 쌀을 준다는 이유로 흰쌀밥을 제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쌀눈 속 비타민 B1은 제거된 상태였던 거죠.


결국, 자원한 군인들에게 좋은 쌀을 주고자 한 배려가 아이러니하게도 베리베리병이라는 집단 질환을 불러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해군 커리, 살아있는 자부심"


쌀눈과 쌀겨에 비타민 B1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해군은 도정하지 않은 쌀을 배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병의 원인이 여전히 전염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데다, 도정 전 쌀의 거칠고 텁텁한 식감을 병사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겁니다.


바로 이 시기에 커리가 일본에 처음 들어오게 됩니다. 영국을 통해 건너온 커리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스튜처럼 묽은 형태로 바뀌고, 난이라는 빵이 아닌, 쌀 위에 부어 먹는 방식으로 정착하게 되죠. 바로 우리가 아는 ‘카레라이스’의 시작입니다. 맛이 좋고, 대량 조리도 쉬웠으며, 쌀의 도정 상태가 보이지 않아 해군 식단으로 널리 보급되기에 적합했습니다.


커리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카레’라는 이름은 curry의 일본식 발음인 ‘카레(カレー)’에서 온 단어입니다. 카레는 어느 나라에 가도 현지화가 잘 되는 음식이라, 인도가 기원인 카레는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정착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해군의 주요 거점이었던 요코스카 지역에는 지금도 커리를 든 마스코트 ‘수커리’가 있고, ‘요코스카 해군 커리’ 인증마크도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해군의 전통 음식이라는 자부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죠. 현재 판매되는 골드카레 제품이 요코스카 해군 커리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정말 기회가 된다면, 저는 직접 요코스카에 가서 원조 해군 커리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쌀겨 속 생명의 단서"


일본은 이미 1800년대에, 쌀겨와 쌀눈 속에 인체에 꼭 필요한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쌀 도정과 관련된 베리베리병 사례를 반복해서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쌀겨·쌀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쌓여간 거죠.


이렇게 축적된 실험과 경험 덕분에, 약 25년 후, 쌀겨와 쌀눈에 들어 있는 성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혀보려는 과학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스즈키 우메타로(Suzuki Umetaro, 1875-1943)입니다.


1910년, 스즈키는 쌀겨에서 알코올을 이용해 어떤 유효 성분을 추출합니다. 그 물질을 동물에게 투여하자 베리베리병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비타민 B1의 발견이 바로 이 순간입니다. 스즈키는 이 물질에 ‘아베르민(Abermin)’이라는 이름까지 붙였고, 분명히 과학적 업적으로 남을 만한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비타민’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유럽 과학자였습니다. 1912년, 폴란드의 카시미르 푼크(Casimir Funk, 1884-1967)는 쌀겨에서 추출한 같은 물질을 ‘오리자닌(Oryzanin)’이라 부르며 ‘비타민(vitamine)’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로 인해, 최초의 비타민 발견자로는 푼크가 알려지게 되죠.


반면 스즈키는 일본 내에서, 일본어로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당시 국제 과학계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고, 결국 ‘비타민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카시미르 푼크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과학자로, 1920년대의 혼란한 유럽을 떠나 미국에서 연구를 이어갑니다. 푼크는 비타민 B1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정리하며 그 성분을 ‘항각기병 인자(anti-beriberi factor)’라고 명명했고, 이 성분이 아민(amine) 계열이라고 생각해 ‘필수적인 아민’이라는 의미의 'vitamine'이라는 단어도 만들어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항괴혈병 인자(비타민 C), 항펠라그라 인자(비타민 B3), 항구루병 인자(비타민 D) 등 다른 비타민도 존재할 것이라는 이론을 제안합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나도 흰쌀밥만 먹는데, 나는 왜 각기병이 없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타민 B1은 육류에도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풍부하죠. 다양하고 맛있는 K-치킨 브랜드가 사랑받는 우리나라에서 비타민 B1 결핍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든 일이 아닐까요?



2. Vitamin B3와 타코


"동양의 쌀, 서양의 옥수수"


동양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하며 베리베리병이 퍼졌지만, 서양에서는 쌀 대신 밀과 옥수수를 탄수화물의 주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옥수수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요?


17~18세기 유럽, 신대륙에서 들어온 옥수수는 면적당 수확량이 높고,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어 특히 가난한 계층에게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옥수수를 주로 먹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얼굴과 목 부위의 피부가 거칠어지고 벗겨지며, 설사·복통이 동반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 병은 이탈리아 의사 프란체스코 프라폴리(Francesco Frapolli, 1738-1773)가 1771년에 연구하며 ‘펠라그라(Pellagra)’, 즉 ‘거친 피부’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는 증상을 위주로 연구했고, 한때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볕이 원인이라고 추정하기도 했죠.


19세기 말~20세기 초, 옥수수는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도 퍼집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남부, 펠라그라는 사실상 대유행에 가까웠고, 많은 사람들은 이 병을 전염병으로 오해했습니다. 환자들은 격리됐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의사나 간호사 등 환자와 접촉한 이들은 아무도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주로 가난한 흑인 농민이나 빈민층에서 발병했던 것이죠.


이상함을 느낀 과학자 조셉 골드버거(Joseph Goldberger, 1874-1929)는 이 병이 전염병이 아니라 영양 결핍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그는 실험을 위해 환자의 분비물을 직접 섭취하고, 자신과 동료에게 주사를 놓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 전염성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교도소와 고아원에서 식단 대조 실험도 진행합니다. 한쪽은 옥수수만 공급, 다른 쪽은 신선한 돼지고기와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합니다. 그 결과, 옥수수만 먹은 집단에서 펠라그라가 발생했고, 다른 집단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골드버거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가난한 것도 억울한데, 내 병까지 가난 탓이라니요.

하지만 그는 정확한 대조군과 실험 설계로 펠라그라가 전염병이 아닌 영양 결핍으로 생기는 병임을 증명합니다. 이후, 과학자 콘라드 엘베햄(Conrad Elvehjem)이 1937년, 쌀겨와 동물 간 추출물에 들어 있는 ‘니코틴아마이드’(비타민 B3)가 펠라그라를 예방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는 개에게 펠라그라 유사 증상을 유도한 뒤, 비타민 B3를 투여해 증상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로써 펠라그라는 가난의 상징이 아닌,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질병임이 증명되었고, 비타민 B3는 또 하나의 필수 영양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엘베햄은 나중에 위스콘신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미국 영양과학계의 자랑으로 기억됩니다.


"옥수수에는 비타민 B3가 없는 게 아닌데?"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긴 세월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남미 원주민들은 왜 펠라그라에 걸리지 않았을까?”

그 비밀은 조리법에 있습니다.


밀이나 쌀처럼, 옥수수에도 사실 비타민 B3(니아신)가 들어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옥수수 속 특정 단백질(주로 제인, zein)이 비타민 B3를 꽉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섭취하면 비활성형 상태로 남아 우리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옥수수 자체에 B3가 없어서가 아니라, 흡수되지 않아서 생긴 병이 펠라그라인 셈입니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 왔습니다. 그들은 옥수수를 석회수(알칼리성 물)에 불린 뒤 삶는 조리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전통적인 방식은 지금도 쓰이고 있으며, 니시타말리제이션(nixtamalization)이라는 과정입니다. 이때 옥수수 껍질이 쉽게 벗겨지고, 고소한 맛이 더해지며, 비타민 B3와 단백질의 결합이 끊어지게 되죠.


즉, 활성형 비타민 B3가 방출되어 우리 몸에 흡수 가능한 형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리된 옥수수는 타코, 토르티야, 나쵸로 만들어졌고, 남미 원주민들은 자연스럽게 펠라그라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옥수수가 후에 유럽과 미국에 전해졌을 때는 이런 조리법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말린 옥수수를 그대로 갈아 머핀이나 콘빵으로 조리했기 때문에, 비타민 B3가 여전히 흡수되지 않았고, 펠라그라가 퍼지게 된 것이죠.


이후 미국은 영양소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곡물에 비타민을 첨가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곡물 강화(fortification)’라고 부르고, 대표적인 예가 콘프레이크(corn flakes)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시리얼을 만든 켈로그(Kellogg)는 1940년대부터 비타민 B 복합체를 첨가한 강화 시리얼을 출시하며 이제는 아침 식사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수천 년 전, 인디언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요?

단지 껍질을 벗기기 쉬워서였을까요,

아니면 몸이 좋아지는 걸 직접 느꼈던 걸까요?

전통 조리법 속에는 지혜가 담긴 수많은 과학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3. Vitamin A와 당근


"야간레이다를 숨기기 위한 당근이야기"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당근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 “밤눈이 밝아진다” 같은 이야기요. 맛없는 당근을 억지로 씹으며 ‘진짜 눈이 좋아지는 걸까?’ 의심했던 기억, 있으시죠?


이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시력이 좋아진다거나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의 진짜 기원은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 본토를 침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영국 공군(RAF, Royal Air Force)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리, 영국이 공중전에서 승리합니다. 당시 영국은 최신 무기였던 야간 레이다(Night Radar) 기술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덕분에 어두운 밤에도 독일 전투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탐지하고, 공중에서 정밀 조준이 가능했죠. 그런데 이 기술이 독일에 들킬 경우, 전세가 역전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야간 레이다 기술을 숨기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게 바로 "영국 조종사들이 당근을 많이 먹어서 밤눈이 밝다(Cat’s Eye)"는 이야기였습니다. 언론과 포스터, 선전물에는 조종사들이 당근을 씹으며 시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등장했고,

이는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됩니다.


그 몇 년 뒤, 독일은 결국 영국 본토를 향해 무차별 폭격을 시작합니다. 이에 맞서 영국은 도시 전체의 조명을 꺼버리는 블랙아웃(blackout) 정책을 시행합니다. 밤에 도시를 새까맣게 만든 채, 독일 전투기들이 목표물을 찾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었죠.

한편, 영국 조종사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독일 전투기를 정확히 격추시킵니다. 이는 모두 야간 레이다의 힘이었지만, 대중은 ‘당근 덕분이다’라고 믿게 되었고, 이 이야기는 전후에도 계속 살아남게 됩니다.


물론, 이 얘기를 실제로 독일군이 믿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독일군 파일럿 식단에 당근이 더 많이 포함됐었다는 이야기가 당시 RAF 조종사들 사이에서 전해지긴 했습니다.



"당근이 야간 시력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근에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한데, 이는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바뀝니다. 그리고 비타민 A는 ‘로돕신(rhodopsin)’이라는 시각 단백질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로돕신은 어두운 곳에서 빛을 감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로돕신에 붙어 있는 트랜스-레티날(trans-retinal)이라는 분자가 빛을 받으면 시스-레티날(cis-retinal)로 바뀌며, 시각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반응을 시작하죠. 그래서 베타카로틴이 부족하면 비타민 A도 부족하고, 그 결과 retinal이 부족해져서 로돕신이 작동하지 못하게 되어, 야간 시력이 어두워지는 야맹증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비타민 A를 많이 먹는다고 시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로돕신은 필요 이상으로 갑자기 늘어나는 단백질이 아니고, retinal이 넘쳐난다고 해서 더 잘 작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비타민 A는 결핍을 예방하는 역할이지, 시력을 ‘개선’하거나 ‘회복’시키는 영양소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 과장된 프로파간다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 아니었나 합니다. 당시 영국에는 당근을 손에 들고 ‘간식’처럼 먹는 어린이들의 사진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영국 정부가 독일을 속이기 위한 '군사 전략'은 정작 자국민의 일상을 바꿔놓은 전시 과학의 아이러니한 풍경입니다.



4. Vitamin D와 생선기름


"먹기 싫은데..."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대거 몰려들며, 풍요와 빈곤을 동시에 불러왔습니다. 아이들마저 석탄을 나르고, 방직공장 굴뚝 사이를 누비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런던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이상한 병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뼈가 휘고, 척추가 뒤틀리며, 다리는 O자 모양으로 굽어지는 증상. 이 병은 '구루병(Rickets)'이라고 불렸고, 급기야 "런던 아이들은 다리가 휘어 있다"는 말까지 돌 정도로 사회적 문제로 번집니다.


1910년대,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멜란비(Edward Mellanby, 1884-1955)는 이 병에 주목하고 실험을 시작합니다. 그는 대구의 간에서 짠 기름(cod liver oil)을 먹인 강아지들이 구루병 증세에서 회복되는 걸 확인하죠. 당시 간유에는 비타민 A가 풍부하다는 게 알려져 있었기에, 멜란비는 "이건 아마 비타민 A의 효과일 것이다"라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1920년대 미국, 과학자 엘머 맥컬럼(Elmer McCollum, 1879-1967)은 간유에서 비타민 A를 제거한 뒤에도 구루병이 여전히 낫는 걸 발견합니다. 즉, 간유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죠.


이미 A, B, C가 있던 터라, 그는 이 새로운 영양소에 비타민 D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간유에 존재하는 비타민 D가 뼈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정부는 아이들에게 간유를 먹이는 정책을 펼칩니다. 하지만… 문제는 ‘맛’이었습니다.


생선도 비린데, 그 간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기름 형태로 그대로 삼켜야 했습니다.

목을 타고 넘어갈 때의 묘한 냄새와 미끄러운 감촉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트라우마가 되었죠.

먹기 싫어서 도망치고, 울고, 몰래 숨기던 세대가 지금은 중장년층으로 성장해서, 그 냄새만으로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우유 급식이나 분식 장려정책이 세대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처럼요.


지금은 비타민D가 햇빛으로 흡수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생선의 간에서 짠 기름을 먹지 않습니다. 오메가 쓰리로 인해 먹어야 할 때, 요즘은 캡슐화시켜서 기름을 가둬놓고 먹습니다. 훨씬 나이진 셈이죠.


1910년부터 1948년까지, 불과 40여 년 사이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비타민이 우르르 밝혀졌죠. 이렇게 20세기 초,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비타민들은 국가의 정책을 바꾸고, 한 세대의 기억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조용합니다. 최근 70년 동안 '비타민의 발견'이라는 뉴스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학계에서는 말합니다.


인간의 대사경로는 거의 완벽하게 분석됐고, 그 안에서 작용하는 비타민은 이미 모두 밝혀졌다고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혹시 우리가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필수 요소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비타민의 시대’는 끝났지만, 비타민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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