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되돌린 단백질
오늘날 당뇨병은 흔한 대사질환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조절하기 위한 다양한 약제가 개발되어 있습니다. 진단 후 식습관을 개선하고 꾸준히 운동을 병행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뇨병의 원리가 밝혀지기 전에는 제대로 된 치료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덜 먹는 것’이 유일한 대처였고, 이는 체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려 일상생활조차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치사율이 매우 높은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그런 당뇨병이 이제는 관리 가능한 ‘생활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질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치료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뀐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흐름이 반전되기까지 어떤 과학적 노력들이 있었을까요?
1923년, 인슐린의 발견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두 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상의 공로가 공동 연구자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상금을 네 등분해 4명이 나누어 갖습니다.
치명적인 불치병으로 알려졌던 당뇨병의 인식을 단번에 바꾸어 놓은 이 발견은, 단지 돈과 명예를 넘어선 ‘연구 윤리’와 ‘협력’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과학계에서는 이 발견의 영예가 캐나다 연구진에게 집중된 것에 불만을 표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당을 좇는 과학자들을 찾아 유럽과 미국으로 떠나보겠습니다.
1869년, 독일.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폴 랑게르한스(Paul Langerhans, 1847-1888)는 소화기관을 연구하던 중, 췌장을 푸른색 염색약으로 물들이다가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합니다. 췌장 전체에 걸쳐 불규칙한 모양의 특이한 세포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죠. 그는 이 발견을 학위 논문에 기록했지만, 해당 세포들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후 랑게르한스는 췌장 연구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고, 대학 강사로 일하다 결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사실 그는 이외에도 여러 세포를 발견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피부 면역세포인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입니다. 오늘날 이 세포 역시 그의 이름을 따 랑게르한스 세포(Langerhans cell)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24년 후, 다른 학자들은 랑게르한스가 발견했던 췌장 속 세포 군집에 ‘랑게르한스섬(islets of Langerhans)’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그의 연구를 기립니다. ‘islet’은 ‘작은 섬’을 뜻하는 말로, 췌장 조직 속에 점처럼 흩어진 이 세포 군집의 형태를 잘 표현해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랑게르한스섬 안에 알파(α), 베타(β), 델타(δ), 감마(γ) 세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알파세포는 글루카곤, 베타세포는 인슐린을 분비하며, 이들이 혈당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 주인공은 독일의 생리학자 오스카 민코스키(Oskar Minkowski, 1858-1931)입니다. 그는 네 편의 주요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중 첫 번째 논문은 조제프 폰 메링(Joseph von Mering, 1849-1951)과의 공동 연구로 발표되었고, 이후 대부분의 연구는 독립적으로 수행했습니다. 당시 메링은 타이레놀(acetaminophen)과 바비튜레이트(barbiturate) 계열 약물 개발에 집중하느라 바쁜 상황이었을 거예요.
민코스키는 개의 췌장을 완전히 제거하면 당뇨병이 유발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증명한 인물입니다. 췌장을 절제한 개의 소변에 파리가 들끓는 현상을 목격하고, 이어서 소변량의 증가(다뇨)와 극심한 갈증(다갈) 등 당뇨병의 전형적인 증상들이 나타남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개에게 췌장 조직 추출물을 먹이면 증상이 완화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합니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어떤 물질이 당 대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이 물질의 부재가 당뇨병을 유발한다.”
이는 과학사에서 췌장과 당뇨병 간의 인과 관계를 최초로 명확히 제시한 발견으로 평가됩니다.
즉, 인슐린이라는 이름은 아직 붙지 않았지만, 바로 이 ‘무엇’의 존재 가능성을 최초로 과학적으로 제시한 인물이 민코스키인 셈입니다.
이후 등장한 인물은 미국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의 해부학자, 리디아 마리아 애덤스 드윗(Lydia Maria Adams DeWitt, 1859-1928)입니다.
그녀는 고양이, 토끼, 쥐, 심지어 조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물의 췌장을 해부하며, 그 분비 시스템의 정교한 구조와 기능을 파헤칩니다.
드윗의 연구는 췌장 전반이 아닌, 특히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s)에 집중됩니다. 그녀는 이 조직이 소화 기능과는 무관한 어떤 물질을 혈류를 통해 직접 분비한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이 물질이 탄수화물 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냅니다.
그녀의 주요 관찰 및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척추동물 간 랑게르한스섬의 조직학적 구조에는 큰 차이가 없다.
2. 췌장이 손상되더라도 랑게르한스섬 자체는 구조적으로 보존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당뇨병이 필수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3. 랑게르한스섬은 혈류를 통해 ‘무엇’을 방출하는데, 이는 소화 작용과는 관련이 없는 성분이다.
4. 이 물질은 해당(解糖) 과정을 강하게 유도하며, 탄수화물 대사의 핵심 조절 인자로 보인다.
드윗의 이 주장은 인슐린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 그 실체에 한층 가까이 다가간 매우 과학적인 접근이라 평가됩니다.
그녀는 명확히 ‘인슐린’이라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기능·분비 경로·대사 연관성에 대한 통찰로 볼 때, 인슐린 개념 형성의 과도기적 핵심 연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무대는 프랑스로 옮겨갑니다.
1905년, 프랑스의 생리학자 외젠 글레이(Eugène Gley, 1857-1930)는 췌장을 제거한 개가 당뇨병을 발병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합니다. 그는 이 동물들에게서 소변이 많아지고(polyuria), 목마름(polydipsia) 같은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며, 간이나 종양과 같은 장기에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또한 글레이는 췌장 추출물을 만들어, 췌장이 제거되어 당뇨병이 유도된 개의 혈액으로 투여(정맥투여)하는 실험도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핵심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당뇨병을 조절하는 효과는 췌장 자체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분비되는 어떤 물질(something secreted)에 기인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이 "무엇"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1909년, 벨기에 생리학자 장 드 메이어(Jean de Meyer)는 수많은 논문을 검토하던 중, 이 미지의 물질에 드디어 이름을 부여합니다. 그는 이 물질이 랑게르한스섬(islets of Langerhans)에서 유래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라틴어 'insula(섬)'에서 어원을 따와 인슐린(insulin)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췌장에서 나오고 있는 그 무엇의 특징을 모른 채 이미 이름이 결정되었죠.
이름만 붙여진 이 물질에 대하여 여전히 넘어야 할 한계들이 존재했습니다.
1. 그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고,
2. 췌장 추출물의 효과는 편차가 컸으며,
3. 어떤 경우에는 이 추출물이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도 발생했습니다.
4. 그리고 여전히 인간이 아닌 동물에만 실험이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기술적 한계를 돌파한 이들이 바로, 1923년 노벨상을 수상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연구팀입니다.
1920년, 당시 의학 전공 졸업생이자 젊은 조교였던 프레더릭 밴팅(Frederick Banting, 1891-1941)은, 수업 자료를 준비하던 중 랑게르한스섬과 당뇨병의 연관성에 주목합니다. 그는 무급으로 실험을 하겠다는 조건으로 내분비학자 존 맥클라우드(John Macleod, 1876-1935)에게 실험실 사용을 요청했고, 이를 허가받습니다.
당시 실험실에는 의과대학 2학년 생 찰스 베스트(Charles Best, 1899-1978)가 조수로 있었는데, 그 역시 당뇨병으로 이모를 잃은 경험으로 이 연구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팀을 이룬 건 심지어 동전 던지기로 결정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1921년, 밴팅과 베스트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어떻게 생성되고 분비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인슐린을 분리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합니다.
1. 먼저, 췌장과 소장을 연결하는 관을 묶어 소화효소가 흐르지 않도록 했습니다.
→ 그러나 랑게르한스섬이 보존되어 있어 당뇨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2. 다음으로, 췌장을 완전히 제거한 개에게
췌장 조직을 식염수에 녹여 상등액만 혈류에 주입했습니다.
→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개의 당뇨 증상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로써 이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합니다.
“췌장의 특정 성분은 수용성이고, 혈류를 통해 작용하며, 소화효소와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
이 발견을 들은 맥클라우드는, 생화학자 제임스 콜립(James Collip, 1892-1965)을 연구에 합류시켜 정제 작업을 맡깁니다. 콜립은 낮은 온도와 낮은 pH 조건에서 소화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인슐린만을 정제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췌장에는 소화효소들이 많았으므로, 화학적 특성의 차이를 이용하여 인슐린이라는 단백질만을 분리·정제하는 데 성공한 것이죠.
1922년, 이들이 만든 인슐린은 바로 임상 현장에 투입됩니다. 당시까지 당뇨병은 사망에 이르는 병으로 인식되어 있었기에, 첫 임상 결과는 전 세계 의학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1922년 1월, 최초의 임상 대상자인 14세 소년 레너드 톰슨(Leonard Thompson)은 말기 당뇨로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슐린 주사(이른바 ‘맥클라우드 용액’)를 맞고 나서, 1일 차에 소변에서 당(糖)이 사라지고, 2일 차엔 몸에서 케톤체가 더 이상 감지되지 않았으며, 한 달 뒤에는 죽음을 기다리던 환자가 멀쩡히 일어나 퇴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후 인슐린은 단순한 실험물질이 아닌, 임상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로 빠르게 자리 잡게 되면서, 인슐린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그러나 당시까지 인슐린은 실험실 수준의 수작업 정제에 의존하고 있었고, 이로는 전 세계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제약 산업이 개입하게 됩니다.
미국의 제약사 릴리(Eli Lilly and Company)는 1922년, 인슐린의 대량 생산을 위한 기술 혁신을 도입합니다. 그들이 사용한 기술은 ‘등전점 침전법(isoelectric precipitation)’으로, 이 기술은 단백질이 등전점(pI)에서 전기적으로 중성이 되어 침전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인슐린의 특정 pH 환경에서 순도 높은 형태로 침전되도록 하여, 효율적인 정제와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기술은 곧 덴마크로도 전파됩니다. 1923년, 덴마크에서는 Nordisk Insulin Laboratory가 설립되어 유럽 최초로 인슐린 생산을 시작합니다. 이로써 인슐린은 북미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당뇨병 치료의 세계적 전환점을 만들어냅니다.
Nordisk는 이후 여러 인수·합병을 거쳐, 오늘날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로 성장하게 됩니다. 현대에는 삭센다(Saxenda), 위고비(Wegovy) 등 비만 및 대사 질환 치료제로 다시 한번 전 세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19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프레더릭 밴팅과 존 맥클라우드에게 공동 수여됩니다. 캐나다는 이를 두고 “인슐린은 캐나다가 세계에 준 선물”이라 자랑하며, 토론토대학교에 이 업적을 전시합니다.
하지만 실제 인슐린 발견은 미국, 유럽, 캐나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누적된 연구 위에서 이룩된 결실이었고, 수상 결과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불만과 이견이 터져 나왔습니다.
캐나다 내부에서도 노벨상의 결정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밴팅은 노벨 수상자 명단에서 자신과 함께 실험을 수행한 찰스 베스트가 빠진 것에 분노합니다. 그는 맥클라우드의 공헌이 과도하게 평가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받은 상금의 절반을 베스트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에 대응하듯, 맥클라우드 역시 자신의 상금 절반을 정제에 결정적 기여를 한 제임스 콜립에게 전달합니다.
이러한 갈등은 특허권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밴팅은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근거로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을 금전적 이득을 위해 취득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며 특허권을 거부합니다. 의사는 아니었지만, 밴팅의 모습을 본 맥클라우드 역시 같은 입장을 밝히며 특허권을 포기합니다. 결국, 특허는 역시 의사가 아니었던 콜립, 그리고 당시 히포크라테스 선서 전이었던 의대생 베스트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토론토대학교에 단돈 1달러에 특허를 양도함으로써, 이 위대한 치료법은 상업화의 문턱을 넘는 대신, 공공의 자산이 됩니다.
표면만 보면 이는 이타적 협력의 이상적인 사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과학자들의 자존심, 윤리, 충돌, 타협이 엇갈린 인간적인 풍경도 함께 존재했습니다.
인슐린은 등장 이후 수많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삶의 질 향상과 생명 연장의 희망을 가져다주었지만,
실제 치료에는 여러 기술적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작용 시간이 너무 짧아 빈번한 투여가 필요했으며, 정제 순도가 낮아 효과에 편차가 있었고, 동물 유래 인슐린(돼지, 소, 낙타 등)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어려웠습니다.
예컨대, 1파운드의 인슐린을 생산하기 위해 10,000파운드의 돼지 췌장이 필요했죠. 게다가 사람의 면역체계가 이를 이물질로 인식하여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빈번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분자생물학과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었습니다.
이제 DNA 재조합 기술을 통해 인슐린 유전자를 대장균에 삽입하고, 인간과 동일한 형태의 인슐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정제 문제, 면역반응, 생산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게 됩니다.
이는 인슐린 역사에서 두 번째 큰 혁명이자, 생명공학이 실질적 치료제 시장을 형성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됩니다.
1. 서열의 시대 – 생어와 인슐린의 서열
1955년,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Frederick Sanger, 1918-2013)는 인슐린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세계 최초로 완전히 밝혀냅니다. 이 업적으로 그는 195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의 성과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980년, 생어는 DNA 염기서열을 읽어내는 분석법을 개발해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바로 오늘날까지도 유전학의 기초가 되는 생어 염기서열 분석법(Sanger sequencing)입니다. 이 기술을 통해 인슐린 유전자의 염기서열 역시 정확히 규명되게 됩니다.
2. 진단의 시대 – 혈당 측정의 도약
1965년, 미국의 Ames 사(이후 Bayer에 인수됨)는 세계 최초로 혈중 포도당을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는 스트립, Dextrostix를 출시합니다. 기존에는 소변 내 당 존재 여부로만 당뇨를 판단했지만, 낮은 혈당은 판단할 수가 없고, 신장이 재흡수를 실패한 당만 검출되므로 혈 중 당의 농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반면, 이 스트립은 단 한 방울의 혈액만으로 결과를 제공하며, 당뇨병 관리에 비약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3. 구조의 시대 – 인슐린의 3차원 구조 해석
1969년, 영국의 도로시 호지킨(Dorothy Hodgkin, 1910-1994)은 인슐린의 입체적 분자 구조를 X선 결정학을 통해 규명합니다. 그녀는 인슐린이 두 개의 폴리펩타이드 체인으로 구성되며, 시스테인 잔기 간의 이황화결합을 통해 안정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녀는 이 연구에 앞서 196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며 구조생물학의 기틀을 세운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4. 코드의 시대 – 휴물린(Humulin)의 시대
1973년, 분자생물학의 획기적 기술인 유전자 재조합(recombinant DNA) 기법이 개발됩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의 Genentech와 제약사 Eli Lilly는 협력하여 대장균에 인슐린 유전자를 삽입하여 사람과 동일한 인슐린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세계 최초의 유전자 재조합 인슐린이 바로 휴물린(Humulin)이며, 이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5. 분자의 시대 – 인슐린의 시간 조절
인슐린의 구조와 기능이 정밀하게 밝혀지면서, 과학자들은 작용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변형을 고안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단백질 말단에 아르지닌(Arginine)을 부가하여 천천히 흡수되고, 장시간 작용하도록 설계된 인슐린 글라르진(insulin glargine)이 지속형 인슐린의 대표주자가 되었습니다.
1900년대 후반이 되면 인슐린 외에도 다양한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가 개발됩니다.
그 기원은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에서 유래한 경우도 많습니다. 항생제로 쓰이던 설폰아마이드계열의 화합물에서 유도되기도 하고(sulfonylurea), 고지혈증 치료제를 찾다가 당뇨병약이 개발되기도 합니다 (thiazolidindione). 혹은 사과나무껍질에서 개발된 약물이 혈당을 내리는 것을 보고 만들어진 약도 있습니다 (SGLT-2 inhibitor). 최근에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을 약물로 사용하여 비만 치료의 목적으로 쓰기도 합니다 (GLP1 mimetics).
당뇨병은 한때 죽음을 의미하는 병이었습니다.
탄수화물을 소화할 수 없는 몸은 빠르게 말라갔고, 치료법도 없어 당뇨병은 곧 사형선고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슐린의 발견은 그 인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췌장이라는 기관 속에서 무언가 분비된다는 실마리부터, 그 물질을 분리하고, 정제하고, 치료제로 만들기까지
이 모든 과정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닌, 여라 나라와 시대의 과학자들이 축적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물론 당뇨병은 지금도 가벼운 병은 아닙니다.
꾸준한 관리 없이는 심혈관, 신장, 신경 등에 합병증을 일으키며 여전히 생명을 위협합니다.
과학은 당뇨병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죽음을 기다리던 병에서 삶을 스스로 관리하는 병으로 그 흐름을 바꿨습니다.
이제 우리는 단지 오래 사는 것을 넘어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더 정교하게 고민하고,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 그 메시지를 다시 읽어야 할 때입니다.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적절히 운동하라.”
라는 신호에 대해서 과학으로 증명하고, 삶으로 실천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