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질병과 맺은 가장 오래된 계약
2020년, 코로나19라는 낯선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며 우리의 일상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효과적인 대응약이 없던 우리는, 그저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거리두기, 집합금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모두가 힘겨운 시기를 견뎌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실 바이러스의 확산은 과거에도 반복되어 왔습니다. 1981년의 HIV, 2009년의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의 메르스 등 여러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해왔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고 달랐습니다. 처음 맞이한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는 신속히 백신을 개발했고, 그 중심에는 RNA 백신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이 있었습니다. RNA 기반 의약품의 발전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RNA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들은 결국 노벨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백신’은 언제,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을까요? 백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의 인류는 질병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을까요? 그리고 시대에 따라, 바이러스에 맞서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요?
백신을 맞는 궁극적인 목적은 ‘면역’을 얻기 위함입니다. 면역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수동면역(passive immunity), 다른 하나는 능동면역(active immunity)입니다.
수동면역은 외부에서 만들어진 항체를 우리 몸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모유 속 면역 성분이나 항체 의약품이 있죠. 반면 능동면역은 우리 몸이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면역 방식입니다. 자연 감염 후 회복하거나, 백신을 통해 항원을 미리 접한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한 번 항원을 경험한 인체는 같은 병원체가 다시 침입했을 때, 그것을 ‘적’으로 빠르게 인식하고 훨씬 더 강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표준 예방접종 일정표를 통해 신생아들이 병원균에 노출되기 전, 면역 시스템이 항체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에 백신을 접종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질병이 사라지면 백신도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령,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중 누구도 천연두 백신을 맞아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연두 바이러스(smallpox virus)는 더 이상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700년대와 180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천연두는 일상처럼 흔한 질병이었습니다. 고열과 구토가 동반되고, 온몸에 작은 물집들이 생기는 이 병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질병의 이름 ‘smallpox’가 ‘작은 주머니(pockets, sacs)’에서 유래했을 만큼, 그 증상은 시각적으로도 강렬했습니다.
생존자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천연두를 앓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 약 3분의 1은 실명을 겪었고,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해도 피부에 남은 깊은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연두의 흔적인 '마마자국’이 없는 사람은 미남, 미녀로 여겨졌고, 반대로 얼굴에 자국이 남은 사람은 ‘점박이 괴물(speckled monster)’이라 불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천연두의 기원은 아직도 불확실하지만,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발견된 흔적이나 기원전 중국의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인류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질병임은 분명합니다. 유럽에서는 15세기경 큰 유행을 겪었고,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즈텍, 잉카 제국은 이 병으로 인해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이미 천연두를 경험하며 어느 정도 면역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 바이러스를 처음 접한 신대륙 원주민들의 몸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병원이지만, 누가 먼저 만났느냐에 따라 생존 확률은 달라졌습니다. 이처럼 천연두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문명의 방향까지 바꾼 역사적 변수였습니다.
천연두를 한 번 앓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후 간호사나 돌봄 역할을 자주 맡았습니다. 당시 사람들도 이미 “천연두는 두 번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종두법(種痘法, variolation)’입니다. 천연두에서 회복한 사람의 고름이나 딱지를 건강한 사람에게 소량 접종하여 면역을 유도하는 방식이죠.
17-18세기 중국에서도 천연두는 거대한 유행병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황제는 청나라의 강희제(1654-1722)로, 정치, 외교, 과학 어느 분야에서도 탁월함을 보인 그는 천연두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강희제 본인도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고 살아남은 생존자였고, 황실의 후계자들이 이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종두법을 장려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서 치사율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종두법은 이미 송나라 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오래된 기술이지만, 실제로 병에 걸릴 위험이 있어 매우 위험했습니다. 이에 강희제 시대에는 더 안전한 ‘숙묘법’이라는 방식이 등장합니다. 이는 병변을 바로 주입하는 대신, 여러 사람(호스트)을 거치면서 바이러스를 점차 약화시킨 후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항간에는 이 과정에 다수의 궁녀들이 호스트로 사용되었다는 설화도 전해집니다.
같은 시대, 인도에서도 천연두는 신의 이름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시탈라 마타(Shitala Mata)라는 여신은 ‘차가운 어머니’라는 뜻을 지니며, 병을 진정시키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녀는 손에 빗자루와 물그릇을 들고 등장하는데, 이는 병균을 씻어내고 청결을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도 종두법은 이미 실용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병이 거의 다 나아가는 환자의 딱지나 고름을 채취해 1년 이상 보관한 뒤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시간과 자연을 이용해 바이러스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매우 과학적이었으며, 접종 당시에는 하인들까지 포함해 가족 전체가 함께 접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곧 집단 면역 개념에 대한 놀라운 선견지명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고대의 종두법은 단순한 전통 의술이 아니라, 오늘날 ‘약독화 백신(attenuated vaccine)’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하며 인류의 생명을 지켜주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종두법은 서양으로 건너갑니다.
1716년, 영국의 귀족 여성 레이디 메리 몬태규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고 살아남았지만, 얼굴에 깊은 흉터가 남았고, 사랑하는 동생은 이 병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경험은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훗날, 그녀는 남편이 오스만 제국의 대사로 임명되면서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 체류하던 중, 오스만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직접 종두법을 시행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1718년, 그녀는 현지 의사를 불러 자신의 다섯 살 아들에게 종두법을 실시합니다. 이는 기록상 유럽 귀족 사회에서의 첫 종두법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1721년, 런던으로 돌아온 레이디 몬태규는 이번엔 공개적으로 자신의 네 살 딸에게 종두법을 시행합니다. 그러나 유럽 사회는 이 ‘동양에서 온 기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신에 불과하다”는 회의적 시선이 강했고, 특히 의학계에서는 강한 반발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천연두의 대유행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고 있었고, 귀족과 왕실의 실험적 시도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점차 종두법은 신뢰를 얻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합니다.
종두법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전, 1721년 런던에서는 사형수들과 고아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생존하면 사면해주겠다는 조건 하에 말이죠. 또, 신세계 식민지에서는 원주민들에게 종두법이 강제로 시행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의료 윤리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천연두의 공포로 인해 1720년대 후반부터 종두법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천연두의 발생률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접종 후 2~3%의 확률로 실제 감염이 일어나는 위험이 있었고, ‘완전한 해방’이라기보다는 절박한 선택지 중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종두법이 널리 시행되던 당시에도 접종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 시골 마을에서 우유를 짜던 여성들, 농장 하녀들이었습니다. 1730년대 영국 농민들 사이에선 그들에 대해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우유 짜는 처녀들은 피부가 맑고,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들은 종종 소의 피부에 생기는 것과 비슷한 작은 물집이나 발진을 겪었지만, 천연두가 아무리 퍼져도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이 특이한 면역력은 오랫동안 풍문으로만 전해지던 농촌의 상식이었죠. 이 현상을 주목한 인물이 존 휴스터(John Fewster, 1738-1824)라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우두(cowpox)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논문을 발표합니다. 명확한 실험 자료는 없었지만, 이 직관은 이후 백신의 방향을 바꾸는 씨앗이 됩니다.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은 농부 벤자민 제스티(Benjamin Jesty, 1736-1816)입니다. 그는 이 소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1774년 자신이 키우던 소에서 나온 우두의 고름을 이용해 아내와 두 아들에게 주사합니다.
아내는 접종 부위에 심한 염증을 겪었지만 곧 회복되었고, 두 아들 역시 무사히 넘어갑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두를 이용해 천연두를 예방한 사람이 되었지만, 농부라는 신분은 그를 공식 기록에서 한동안 배제시켰습니다. 과학적 실험, 근거가 부재했고, 정작 그는 논문을 쓰는 법도 몰랐습니다.
당시 사회는 동물의 병원체를 가족에게 주입했다는 이유로 그를 조롱하고 비판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실험은 재조명됩니다. 1805년, 그는 런던에 초청되어 공식적인 인정과 보상을 받습니다. 채혈기와 증명서, 초상화와 함께, 그의 이름은 드디어 백신의 역사 속에 기록되었죠.
우리가 알고 있는 백신의 아버지는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입니다. 벤자민 제스티의 시도보다 약 20년 뒤인 1796년, 제너는 우유 짜는 여성 사라 넴스(Sarah Nelms)의 손에서 나온 우두(cowpox) 고름을 채취해, 8살 소년 제임스 핍스(James Phipps)의 팔에 주입합니다. 이후 핍스에게 실제 천연두 고름을 주사했지만, 소년은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례는 오늘날까지 ‘과학적 백신 실험의 출발점’으로 기록됩니다.
제너는 이 사례를 왕립학회(Royal Society)에 논문으로 제출했지만, 단 하나의 사례만 담긴 연구는 거절당합니다. 그러자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령대, 지역, 성별을 넓혀가며 실험을 반복했고, 1798년에는 23건의 접종 사례를 담은 논문을 발표합니다. 백신은 이제 우연이나 믿음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너도 윤리적 논쟁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실험을 한 것, 참가자들의 ‘동의’ 여부가 불명확했던 점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논쟁거리입니다. 또 종교계에서는 “신이 내린 질병을 인간이 일부러 옮기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격렬한 반대가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너는 평생 백신의 효과를 알리고 그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헌신했습니다. 자신의 정원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백신의 사원(Temple of Vaccinia)’이라 부르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로 접종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제너는 ‘최초의 발견자’도, ‘최초의 시도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학의 언어로 백신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노력은 큰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1890년대, 수세기 동안 사용되던 ‘종두법(variolation)’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신 ‘백신(vaccination)’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정착합니다. ‘백신’이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vacca에서 유래된 것이죠. 진짜 천연두 바이러스가 아닌, 소의 우두 바이러스를 예방으로 주입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1950년대, 천연두는 북미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고, 마침내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의 완전 박멸을 공식 선언합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이 스스로 없앤 첫 전염병이 된 것입니다. 지금은 비상 상황을 대비해 천연두 백신만 보관할 뿐, 그 어떤 누구도 접종을 받지 않습니다. 즉, 지금 이 시대엔 천연두에 면역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얼굴만 바꿔 다시 찾아옵니다.
천연두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바이러스, 원숭이두창(monkeypox)은 2022년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WHO가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게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2023년에는 해제되었지만, 경계는 여전히 풀 수 없습니다.
백신은 과거를 끝낸 도구인 동시에, 현재를 준비하고 미래를 지키기 위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또 다른 바이러스와 싸우며 그 무기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 지금 돌아보면, 병변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백신의 효과를 기대했던 초기의 시도는 사실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실험적 도전이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여러 가지 ‘과학적 우연’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1. 같은 그룹의 바이러스
우두(cowpox)와 천연두(smallpox)는 모두 오르토폭스(orthopox) 바이러스 계열에 속하는 유사한 바이러스입니다. 이들은 매우 유사한 항원 구조를 지니고 있었기에, 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이 다른 바이러스에도 ‘크로스 보호’ 효과를 줄 수 있었던 것이죠.
2. 이중가닥 DNA
이 두 바이러스는 모두 이중가닥 DNA(double-stranded DNA)를 유전정보로 가집니다. 이는 바이러스가 비교적 안정된 구조를 유지하도록 해주며, 변이 가능성을 줄여줍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단일가닥 RNA를 갖고 있어 빠르게 돌연변이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달리, 이중가닥 DNA는 한쪽 서열이 바뀌어도 다른 쪽이 보완해주는 ‘검수 기능’을 갖고 있죠. 이 덕분에 천연두 바이러스는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하면서도 비교적 일정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3. 생백신 효과
제너가 사용한 백신은 ‘살아 있는 우두 바이러스’, 즉 생백신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백신, 단백질 백신, RNA 백신 등 다양한 백신 형태를 알고 있고, 각각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중 생백신은 바이러스의 활성을 일부 남긴 채 항원을 체내에서 계속 생성하게 만들어, 강력하고 지속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합니다. 당시에는 이 같은 과학적 배경을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우두 백신은 이상적인 생백신의 조건을 자연스럽게 충족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4. 종간 감염 없음
천연두 바이러스는 ‘종간 점프’를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바이러스들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종을 넘어오며 그 과정에서 형태와 성질이 급변합니다. 하지만 천연두는 사람만을, 우두는 소만을 감염시켰고, 서로 종을 넘나들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바이러스의 ‘원형’이 비교적 보존되었고, 백신 효과도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었죠.
이렇듯 백신의 성공은 단순한 ‘용기 있는 실험’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극히 드물고 유리한 조건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2025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의약품 중 절반은 항체치료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자연면역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실험실에서 항체를 설계하고, 백신을 mRNA로 구현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백신과 항체는 과학의 진보로 탄생했지만, 그 뿌리는 인간의 기억과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떤 바이러스가 또 찾아오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지식을 축적하고 대응하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과학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이며, 백신이 단순한 주사가 아닌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