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몰랐겠지만, 우린 모두 삼손이다.

나에게는 여든까지 가져갈 세 살 버릇이 있다.

바로 머리꼬기.


갓 태어나 아직 머리카락 한 올 없던 시절부터, 나는 같이 자는 어른들의 머리를 집요하게 꼬며 잠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들 때, 깊이 생각할 때, 집중할 때 나는 머리를 꼰다. 생각을 하면 머리를 꼬고, 꼬다 보면 생각에 빠진다. 시도 때도 없다.


내 친구 상림이에게는 이상한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내가 시무룩해하는 모습을 보는 거다.

"시무룩한 바키봉 표정이 제일 웃겨!"

상림이는 내가 어떤 이유로든 풀이 죽은 얼굴을 하면 배꼽 빠지게 웃는다. 그런 그녀에겐 목표가 있다. 내가 매일 꼬는 머리를 자르는 거다. 머리를 꼴려다가 꼴 머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 시무룩해할 그 꼴이 아주 웃길 것 같다나 뭐라나..


"저 머리를 아주 잘라버려야지!!"

"흥 그러면 뒷머리 꼬면 되지"

"그럼 아예 삭발해야지"

"참내 너가 머리 자르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겠냐?"

"아주 그냥 자는 사이에 다 잘라버리면 되지!!!"


자는 사이에 자르면 정말이지 속수무책 아닌가.. 더 이상 그녀를 막을 방패가 없었다. 내 머리는 잘리고 말거다. 상상만으로도 즉시-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그걸 본 상림이는 깔깔 웃었다. (변태가 분명)


그때,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돌땡이 놀라운 일침을 날렸다.

"근데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없으면.. 그 누구라도 시무룩하지 않을까? 꼭 머리 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 그러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자고 일어났는데 하루아침에 머리가 없어진다면 그 누가 행복하겠는가.

모두 잠시 말을 멈췄다.

타의에 의해 삭발된 아침이라니..

우리는 모두 같은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윽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삼손이 떠올랐다.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잘려있던 삼손.

그대로 힘을 잃고 적에게 붙잡힌 삼손.


난 여태, 그 이야기를 늘 황당한 전설쯤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마음을 좀 알 것도 같았다.


그는 그냥.. 너무 시무룩했던 게 아닐까?


갑작스럽게 상실한 탐스러운 머리카락..

그가 힘을 잃은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칼을 들고 싸우다가도 칼에 비친 내 모습에 시무룩.

방패를 들고 싸우다가도 방패에 비친 내 모습에 시무룩.

적과 싸우다가도 적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에 시무룩.


삼손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과학"이었다.


어쩌면 나도 삼손이다.

누군가 내 머리를 몰래 싹둑 잘라버린다면,

나 역시 시무룩해져 하루 동안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힐 것이다.


당신도 몰랐겠지만

우리는 모두, 삼손이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잘 때 머리를 잘 챙기고 자자.

힘을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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