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내가 나를 만났다
언제부턴가, 여행이란 단어는 ‘도망’보다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세상이 낯설게 느껴질 때, 나는 짐을 싸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는다. 새로운 곳을 향하지만, 그 안에서 늘 익숙한 감정을 만난다.
처음 간 도시의 오래된 벤치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어릴 적 놀던 공원의 냄새가 난다.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엔, 어느 겨울날 엄마가 건네주던 따뜻한 우유 한잔의 따뜻함이 스며 있다.
여행은 나에게 늘 과거의 조각들을 꺼내 보여준다.
묻어두고 지나쳐온 감정들이, 조용히 말을 건다.
“잘 지내고 있니?” 하고.
여행은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때로는 한 도시에서 아무 목적 없이 길을 걷고, 시장 골목에서 우연히 들은 낯선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낯선 언어가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고, 이방인이 된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용한 관찰자가 된다.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던 무게들이 하나씩 풀어진다.
돌아보면 나는 여행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무엇보다 자주 만난 건 나 자신이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는 공간 속에서 나는 나다운 나로 살아 있었다.
어쩌면 진짜 나를 발견하는 건, 늘 내가 머물던 자리를 떠날 때 가능해지는지도 모른다.
잠시 멀어져 봐야 내가 얼마나 고단했는지,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 얼마나 살아 있고 싶었는지를 알게 된다.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내가 되고 있었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걸으며, 마음속에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바람에 실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진짜 여행은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가는 것임을.
풍경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마주하는 것임을.
그래서 나는 또 짐을 싼다.
이번에는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