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떠났다

조용한 골목에 마음을 놓고 왔다

by Heartstrings

언제부터였을까.
북적이는 여행지보다, 오래된 골목이 더 마음을 끌기 시작한 건.

현지인의 일상이 묻어나는,
낡고 조용한 길 위를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느려진다.
몸의 속도보다 감정이 먼저 걷기 시작하는 시간.


카페 창문 틈 사이로 벽돌담이 보이고,
그 위를 기웃거리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슬쩍 바라봤다.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그 순간이
오히려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모든 게 너무 크고 빠르게 흘러가던 일상에서
나는 지금 이 조용한 벽돌 담장 앞에서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느끼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흐르던 낯선 음악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들렸다.
그 선율은 분명 처음 듣는 곡인데,
기억 속 어디에선가
비슷한 감정을 꺼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모든 낯섦은,
결국 나의 안쪽에서 온 것이라는 걸.


누군가의 하루가 이어지는 작은 시장,
모퉁이 식당에서 어설프게 주문한 점심,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사이로
내 마음의 조각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낯선 언어들이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그 공간에서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그 골목에 무언가를 놓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간 감정 하나,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 한 조각,
스스로도 잊고 있던 나의 얼굴 하나.

그 조용한 골목은
그 모든 것들을 말없이 받아주었다.


여행이란 참 이상하다.
우리는 늘 낯선 곳을 향해 떠나지만,
그 안에서 늘 익숙한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마음 한 켠엔 조용한 확신이 자리잡는다.

아, 나는 또 나를 잘 지켜내고 있구나.
괜찮게, 살아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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