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대교
우리는 '센티'하다는 느낌을 언제 처음 인지했을까?
7살 무렵이었던가...
어느 비 오는 날, 언니와 나는 양철 지붕 끝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작은 우산을 받쳐 들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곳이 비오는 바깥 풍경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집 앞 공터의 흙바닥은 비로 인해 이리저리 파이고 이내 작은 물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위로 다시 비가 내려 작은 동그라미 파장이 그려졌다.
'다닥다닥 다다다닥... 다닥 다다닥...'
양철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비와 장단을 맞추는 장구 소리와 같다.
7살 내 인생에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아주 멀리 떠나는 여행과 같음을 어렴풋이, 처음으로, 가슴이 먹먹하게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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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다음날, 계단 아래 버려져 있던 신발 안에선 작은 콩나물 하나가 올라왔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어디서 날아온 콩한쪽이 하필 신발안에 숨어있다 피어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엄마가 마당에서 콩나물을 씻다가 휙 날라보낸 생콩 하나가 하필 거기에 박힌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무지개를 보는 만큼이나 신기하게 생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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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와 삼촌 Alex의 여행 마지막 날엔 비가 많이 내렸다.
짱구는 비 오는 날 차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차지붕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좋아하고,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밖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유리창 가까이 코가 닿을 듯 지켜본다.
이순신 대로를 지나자니 두 개의 주탑이 하나씩 순서대로 지나간다.
다리의 케이블들이 교각을 지날수록 점점 날개를 펴는 듯 다가온다!
짱구는 창가의 흘러내리는 빗물들을 보면서 비 오는 송광사에서의 연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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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탕웨이)와 해준(형사 박해일) 사이 본격적인 관계 변화를 포착해 낸 영화 '헤어질 결심'의 명장면은 비 오는 날 송광사에서였다.
"서래씨가 나하고 같은 종족이라는 거, 진작에 알았어요"
라고 말하자
서래는 해준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미소로만 답한다.
송광사 설법전 계단을 우산 쓰고 나란히 걸으면서 서래의 거친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해준의 애틋한 사랑을 떠올린다...
언젠가 자기에게도 찾아올 아찔한 순간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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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에 도착하니 저 앞에 보이는 비에 젖은 다도해의 전경과 뻘밭에 반영된 섬의 반영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떠도는 나그네의 피곤을 다독이는 위로의 바다이다.
나그네를 위로하는 다른 하나는 좋은 화이트 와인이다.
Alex는 수산시장에서 뜬 세꼬시와 와인으로 짱구와의 마지막 여행길을 기념하고자 한다.
짱구의 컵엔 사과주스가 채워져 있지만, 나중에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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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돌아가고픈 감성을 심어준 날을...